PMM 2기 일본 세토교회 송을섭 목사

 

2002년 목회 1년차 전도사로서 부름 받고 천안학원 교회를 섬기고 있을 때이다. PMM이라는 선교사 운동이 생긴다는 뉴스가 한국 교단에 퍼졌다. 한국에서 성공적인 목회를 한 3년차 이상의 목회자가 북아태지회 내에 있는 다른 나라에 가서 개척선교를 한다는 것이었다. 참 의미 있는 선교사 운동이라고 생각했다. 해외에서의 선교사 경험은 선교사 자신은 물론 해외 선교 경험이 있는 목회자가 한국에 있다는 것이 한국 교회에도 큰 힘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물론 그때까지만 해도 “PMM”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로 여겨졌다.

그렇게 생각하고 2003년이 되어 2년차 전도사가 되었다. 물론 PMM 뉴스는 ‘영원한 복음’을 통해서 계속 듣고 있었고, 일본에서 언어 연수하시는 목사님들에게 임하시는 성령을 글로서 체험하고 있었다. 그러한 글들을 보면서 ‘나도 안수 받으면 PMM에 지원해 볼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혼자 중국으로 선교지를 정해 보았다. 물론 중국에 가 본 적도 그리고 특별히 아는 것도 없었다. 단지 아주 큰 나라, 아주 많은 인구가 있는 나라, 한국과 가까운 나라, 한자 문화권 정도였다. 하지만 그 때 중국을 생각한 것은 우습게도 ‘대한의 남자가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목회자가 되었으면 큰물(?)에서 선교해야 한다.’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었다.

그 해 11월 말경이라고 기억되는데 친구 목회자의 결혼식이 있어서 동료 전도사와 함께 버스를 타고 광주로 내려가고 있었다. 함께 가는 전도사는 2년 동안 중국에 가서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공부하고 온 경험이 있어서 현재 중국을 선교지로 생각하고 있는 나에게는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분이었다. 버스 안에서 몇 시간인가 아주 진지하게 중국어와 중국 선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던 중 전화가 울렸다. 북아태지회의 PMM 담당 권정행 목사님이었다. 내용은 이러했다.

“송 전도사님! PMM에 대해서 관심 있어요?”

그때는 한국인 목회자라면 누구나 PMM에 흥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예, 물론 해외 선교에 대해서는 관심이 있지요. 그런데 어쩐 일이신가요?”

“그럼 내년에 PMM 갈래요?”

이런, 안수 받고 갈려고 했는데…. 그렇지만 언제나 교인들에게 ‘선교합시다! 하나님의 부름에 응답합시다!’라고 설교하고 있는 목회자가 나중에 간다고 말할 수 없어서

“예, 불러주시면 어디든지 가기는 가야지요. 그러면 지금이 2003년이니까 내년 8월에 지원해서 2005년에 출발하는 거지요?”라고 질문을 했다. 물론 1년 동안 열심히 중국에 대해서 공부하고, 중국어도 조금 공부하고 가면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권 목사님은

“아니요. 내년 3월에 출발하는 겁니다. 원래 일본으로 가려고 했던 목사님이 사정이 생겨서 못 가게 되어 이번에 송 전도사님이 그 자리를 대신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닌가?

‘지금이 11월인데 3월에 출발이라고? 아직 아무 기도도 하지 않고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리고 중국도 아니고 일본으로 가라고 하다니…. 일본어는 아무것도 모르는데 큰일이다.’라는 생각들과 함께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그래서 “가라고 하시면 가지만 목사님, 기도할 시간과 아내와 상의할 시간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목사님은 “알았습니다. 시간이 없으니까 내일까지 답변 부탁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하셨다. ‘오늘은 일요일이고 친구 결혼식에 내려가는 중이고 아내는 처가 집에 갔다가 며칠 후에 오는데’라는 걱정을 하면서 "알았습니다. 아내와 상의해 보겠습니다.”라고 말씀드린 후 전화를 끊었다.

그날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다. 계속 일본이라는 것과 내년 3월에 출발이라는 것만 생각하며 기도하고 생각하기를 반복했다. 그런데 이런 큰 문제(?)를 아내와 전화로 상의하기에는 너무나 막막했다. 그래서 그날 밤 ‘내일 권 목사님 전화가 오면, 아내가 돌아오면 만나서 직접 상의하고 전화 드린다고 해야겠다.’라고 생각하고 잠을 청했다.

다음날 오전에 권 목사님 전화가 왔다.

“어떻게 결정했습니까?”

“권 목사님, 지금 아내가 처가에 갔기 때문에 전화로는 상의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며칠 후에 아내가 돌아오면 상의해서 전화 드리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권 목사님은,

“사모님께는 제가 전화를 드렸습니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권 목사님은 아내가 1000명 선교사로 봉사할 당시에 아내의 지도 목사님이었고 내가 신학과 2학년 때 나의 지역교회 담임 목사님이셨기에 우리 가정과는 친분이 있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일본어 한마디도 못하는 아내와 이야기를 하셨다면 당연히 아내에게 못 가겠다는 대답을 들었으리라 기대(?) 하면서

“아아, 그러셨어요? 집사람이 뭐라고 하던가요?”

“사모님이야 가겠다고 하지.” ‘아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일본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내가 간다고 했다니…’ 그렇지만 이제는 피할 방법도, 도망칠 방법도 없어졌다.

“아, 예. 그럼 가야지요. 아내가 가겠다고 했다면 목회자인 저에게는 아무 문제없습니다.”

그렇게 결정이 나버렸다. 나는 아내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간다고 했는지 궁금하기만 했다. 그래서 바로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가겠다고 말씀드린 거야? 일본에 대해서, 일본인에 대해서 알아?”

그랬더니 아내가 하는 말이 “어디 알아야 선교하나? 그리고 나는 그저 당신이 목회자니까. 그리고 매일 설교하는 내용이 ‘하나님 부름에 응답합시다!’니까 당연히 가는 것으로 생각해서 그렇게 말씀드렸지.”

순간 나는 너무나 창피해졌다. ‘나는 말과 행동이 다른 목회자였나?’

“잘했어. 불러 주시는데 당연히 가야지. 만일 당신이 못가겠다고 했으면 나는 다시는 단상에서 전도에 관한 설교는 할 수 없을 거야. 잘했어. 그리고 고마워”

이틀 동안의 고민이 너무나 한심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나보다 더 목회자다운 아내에게 고마움을 느낀 순간이었다. 그러면서 순간 이런 아내가 있음에 감사하게 되었다. 그때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저에게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라고 이런 좋은 기회를 주시는 것을 압니다. 좋은 잔치를 베푸시고 잔치에 참석하라고 불러 주시는 것 압니다. 곡식을 다 길러 주시고 추수하라고 불러 주시는 것 압니다. 정말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길고 길었던 이틀간의 고심이 아내의 한마디 “가겠습니다.”에 의해서 끝이 나고 큰 대륙은 아니지만 인구 1억 3천만 명 중 기독교인이 1퍼센트도 안 되는 일본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드디어 일본으로 출발…

Seto Church.jpg

세토 교회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