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한(閔丙漢, 한국인)

대만 도료 교회(PMM 3기 정대복 목사)

 

       나는 전직 군인이었다가 퇴역한 중국인 남편이 도료로 이사하자고 제안하여 도료에 살면서 30년 가까이 링은탕 교회(오순절교회 계통)를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중국 대륙에서 온 중국인 심 씨 할머니와 한국인 선교사 정대복 목사님이 우리 집에 방문 오셨다. 목사님은 예배를 드린 후 안식일교회는 성경대로 제칠일 안식일을 주일로 지키는 교회이며 토요일에 예배드리니 한 번 와보라면서 초청하였다. 하지만,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다니던 교회가 있어서 교회를 옮기는 것이 곤란하여 지금 다니는 교회에 그냥 다니겠다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목사님은 흔쾌히 “그러면 그 교회에서 열심히 신앙생활 하십시오.”라고 하면서 나와 가정을 위해 간절히 기도해 주시고 돌아가셨다. 얼마 후에 목사님이 나를 포기하기에는 너무나 섭섭하고 안타까워서 다시 왔다면서 방문 오셨다. 이번에도 나는 교회 옮길 마음이 없다고 하고 목사님을 돌려보냈다.

       그 일이 있은 후에 거의 일 년 동안 나는 이상하게도 그 한국인 선교사가 보고 싶고 그 교회에 가고 싶은 마음이 자꾸 들었다. 더는 참을 수 없었던 나는 드디어 한국인 선교사가 있는 안식일교회에 가봐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집을 나섰다. 그날따라 비가 부슬부슬 와서 비를 피하고자 우비를 걸치고 모자를 쓴 채로 사륜 오토바이를 타고 교회를 찾아갔다. 가서 목사님을 찾은 후 중국어로 “몇 시에 예배드립니까?”라고 여쭈어 보았다. 목사님은 우비를 입고 모자를 눌러쓴 데다 중국어로 말하는 나를 처음엔 몰라보시고 반갑게 맞이하시면서 중국말로 어디 사느냐고 물었다. 나는 대뜸 한국말로 대답했다. “목사님, 지난번에 우리 집에 두 번이나 방문 왔었잖아요?” 목사님은 깜짝 놀라며 “아, 그 할머니시네요! 못 알아봐서 정말 죄송합니다.” 하며 얼굴을 붉히면서도 너무나 반가워 내 손을 부여잡고 펄쩍펄쩍 뛰는 것이었다. 역시 우리 한국 사람은 정이 많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헤어졌던 친어머니와 상봉한 아들처럼 기쁨을 이기지 못하는 정대복 목사님을 보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이 교회를 죽을 때까지 다니리라’라는 다짐이 나도 모르게 일어났다. 교회에 빠짐없이 출석하면서 이전에 다니던 교회에서는 들어보지 못했던 진리를 목사님을 통해 깨우치게 되었다. 안식일교회의 가르침이 정말 성경적이라는 것을 점점 알게 되었다.

       얼마 후 교회에서 전도회가 개최되었고 김희권, 박옥순, 오용옥, 정근희, 박현순 이렇게 다섯 분의 장로님과 집사님들이 오셔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봉사하시는 모습에 너무나 감동 받았고 박옥순 집사님은 지금도 나에게 자주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고 신앙을 독려해주는 친동생 같은 자매이다. 드디어 나는 4기 골든엔젤스의 축복의 찬양을 들으며 2007 6 15일 금요일 저녁에 침례를 받았다. 그로부터 6개월 후 12월 마지막 주에 여호수아 청년전도팀이 도료에 와서 전도회를 개최할 때 나의 남편도 침례를 받았다.

       나는 요즘 침례를 받고 천국을 향해 동행하고 있는 남편을 바라보면서 행복감에 젖곤 한다. 하루하루가 감사한 마음뿐이다. 이제는 일곱 자녀의 가정을 안식일교회로 인도하고자 기도 중이다. 도료에 한국인 선교사가 계신 안식일교회가 있다는 것이 너무나 좋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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