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9일 안식일

 

일몰:오후 6시 52분

 

기억절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된 것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고후 1:7).

 

연구범위: 눅 12:49~53, 신 21:15, 고전 9:24~27, 마 18:8~9, 요 14:1~3, 히 11:32~12:4.

 

역사적으로 이름도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쳤다. 그들은 투옥되거나 고문을 받고 처형당했다. 수많은 사람이 직업을 포기하고, 조롱을 받으며, 가족으로부터 배척당하는 아픔을 참았으며, 그리스도를 포기하기보다 종교적 박해를 참아냈다. 오직 하나님만이 그분의 신실한 종들이 견뎌낸 고난의 정도를 아신다.

 

물론 바울은 미리 경고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딤후 3:12). 베드로도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벧전 2:21)라고 하였다.

 

고급 승용차, 경제적 소득 등 소위 ‘번영’을 강조하는 설교자들의 약속은 신자들에게 자동적으로 따라붙는 수식어가 아니다.

 

결국 우리는 제자도의 대가가 아무리 크더라도 최후의 상급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너무 싸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된다.

 

 

※ 학습 목표

 

➊ 깨닫기 : 제자란 스승의 모본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➋ 느끼기 :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삶을 바치셨던 것처럼 우리도 그분을 위해 생명을 드림으로 섬김의 삶을 갈망한다.

 

➌ 행하기 : 현재와 내세에 상급을 가져다주는 제자의 삶을 산다.

 

 

A.

 

❷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 감수해야 할 힘든 조건들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자아를 완전히 포기하고 전적으로 주님의 뜻을 따르게 되는 것이 아닐까?

 

❸ 어떤 보상이 있다면 그대는 기꺼이 힘든 제자의 길을 걷겠습니까?

 

※ 사망을 폐하고 영생을 얻게 되었으니 힘이 들어도 제자의 길을 걸어야 한다.

 

❹ 마지막 시대의 제자로서 각자의 결심은 무엇인지 말해 봅시다.

 

※ 각각 이야기해보자. 자기 생활현장에서 증인이 되도록 해야 한다.

 

 

B.

 

❷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가족들까지 미워해야 한다는 말씀은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 예수님 사랑을 최우선순위로 하라는 뜻이다.

 

❸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성령의 지도에 얼마나 철저하게 순종해야 합니까?

 

※ 자아를 완전히 굴복시키고 절대적으로 성령의 지도를 따라야 한다.

 

❹ 우리가 제자가 될 뿐 아니라 제자를 양육하는 사람이 되라는 부름을 받았다면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이야기해 봅시다.

 

※ 서로 이야기해보자. 먼저 진리를 확실히 알도록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결론: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마련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지금 이 땅에서부터 사랑, 기쁨, 평화, 긍휼, 공의, 순결과 같은 하나님 나라의 원칙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원칙들을 따라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첫째날(일) 3월23일

 

최우선 순위: 비용을 계산함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눅 14:26).

 

 

1. 눅 12:49~53, 14:25~26, 마 10:37을 연구해 보라. 이 심각한 말씀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여기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하시려는 말씀은 무엇인가?

 

[눅12:49~53]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50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 이루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51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케 하려 함이로라 52 이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53 아비가 아들과, 아들이 아비와, 어미가 딸과, 딸이 어미와, 시어미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

 

[눅14:25,26] 허다한 무리가 함께 갈새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 26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마10:37]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답: 이 말씀들은 선악간의 쟁투에 대한 말씀이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생명의 주를 따르는 것이다. 사망의 세력을 잡은 사단이 가만히 있지 않는다. 그래서 가정에서부터 분쟁과 투쟁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은 예수님을 최우선순위에 두지 않으면 제자가 되는 일이 어렵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오늘날 TV 뉴스 진행자라면 그날의 사건을 이렇게 꾸미려고 할 것이다. “인기종교 지도자 나사렛 예수가 오늘 오후 가족 내 증오를 옹호하는 연설을 했습니다. 분석가들은 오늘의 발표를 이웃과 원수에 대한 사랑을 장려했던 이전 진술과 비교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것이 최근 정책의 변화를 의미하는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팔아 예수 운동에 바치라는 취지의 미확인 언급도 나왔습니다. 더 자세한 소식 전해드립니다. 채널 고정해 주십시오.”

 

‘미워하다’라는 단어가 사용된 방식에 대한 면밀한 성경적 연구는 예수님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밝히는 데 도움이 된다. 신 21:15은 일부다처에 대한 모세의 법률이다. 고전적인 번역 성경은 중립적인 의미에서 “하나는 사랑을 받고 하나는 미움을 받다”라고 번역했다. 모세가 말하려는 핵심은 남편이 다른 아내들보다 한 아내를 더 좋아할지라도 그는 덜 사랑받는 아내들을 거절할 수 없다는 데 있다. 그래서 현대적인 번역 성경들을 사랑을 ‘총애’로 미움을 ‘마음에 안 드는’이라고 번역했다. 이 성경절이 분명하게 의도하는 의미는 애정의 정도이다. 이 문맥에서 ‘미움’은 덜 사랑하는 것을 가리킨다. 유사한 성경절인 마 10:37도 이러한 의미에 신빙성을 더한다. 예수님의 관점은 단순하지만 심오한 의미로 충만하다. 만약 가족이 우선이고 그리스도가 둘째라면 예수님은 주인의 권위를 포기해야 한다. 여러 주인을 섬기기란 불가능하다.

 

예수님은 분명 가족의 연대를 강력하게 지지하셨다. 그런데 그런 연대는 흔들리지 않는 기초에서 힘을 얻는다. 그 기초란 하나님을 전적으로, 무엇보다, 가장 먼저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어떤 장애나 방해, 혼란을 허락지 않으신다. 제자도는 그리스도에 대한 온전한 충성이라는 최상의 대가를 요구한다.

 

 

<부가설명> 교과 저자가 미워한다는 단어의 용례를 들어놓았기 때문에 우리는 바른 이해를 할 수 있다. 이것은 증오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순위에 대한 고대 표현이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이 세상에서 우선순위가 예수님이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라고 가르쳐주셨다. 우리의 사는 것 자체가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이고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 자기가 생각하는 것이나 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이 되지 않는 것이면 그만두어야 한다. 옷을 입는 것이나, 음식을 먹는 것이나, 오락을 하는 것이나, 친구를 사귀는 것이나 무엇이든지 그렇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의 길이다. 쉽지 않은 길이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를 믿고 침례를 받을 때에는 그렇게 하겠다고 서약하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담의 씨로 태어난 사람은 죽은 자들이기 때문이다. 죽은 자들에게 최우선 문제는 살아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예수를 믿고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생활하는 것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그 생명의 성질이다. 온 식구들이 함께 예수를 믿으면 함께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을 첫째로 하는 생활을 할 것이다. 이것이 이상적인 것이다.

 

 

교훈: 가족에 대한 증오를 언급한 예수님의 발언은 가족의 파괴가 아닌 하나님에 대한 우선순위를 강조한다. 그리스도의 제자도는 최상의 대가를 요구한다.

 

 

둘째날(월) 3월24일

 

우리의 십자가를 짊어짐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 14:27).

 

 

제자가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그대가 예수님이 당하셨던 동일한 고난을 겪을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기별을 제시하는 방법에 정직해야 한다.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그리스도의 용서, 예수님의 임박한 재림, 비할 데 없는 하늘의 경이로움 그리고 분에 넘치는 하나님의 은혜와 같은 영광스런 진리를 가르쳐야 한다.

 

그러나 신자들이 하나님의 완전한 기별을 전파하려 한다면, 그들은 십자가를 짊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아쉽게도 어떤 신자들은 사람의 행동을 요구하는 기별을 율법주의라고 오해한다. 그들은 자랑스럽게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것을 이루었으니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 외에 인간이 할 일은 없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말에 동의하지 않으신다.

 

 

1. 마 16:21~25, 눅 21:12~19, 요 15:17~20, 16:1~2을 읽어 보라. 우리는 이 성경절들로부터 예수님을 따르는 대가에 대하여 어떤 사실을 알게 되는가?

 

[마16:21~25]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눅21:12~19] 이 모든 일 전에 내 이름을 인하여 너희에게 손을 대어 핍박하며 회당과 옥에 넘겨 주며 임금들과 관장들 앞에 끌어가려니와 13 이 일이 도리어 너희에게 증거가 되리라 14 그러므로 너희는 변명할 것을 미리 연구치 않기로 결심하라 15 내가 너희의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수 없는 구재와 지혜를 너희에게 주리라 16 심지어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벗이 너희를 넘겨 주어 너희 중에 몇을 죽이게 하겠고 17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18 너희 머리털 하나도 상치 아니하리라 19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요15:17~20]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로라 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20 내가 너희더러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터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터이라.

 

[요16:1,2]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지 않게 하려 함이니 2 사람들이 너희를 출회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 하리라.

 

 

답: 이 세상에서는 환난과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침례를 받기 전, 모든 후보자는 예수님이 각자에게 십자가를 지우셨고, 그것 없이는 절대로 그의 제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이 사실이 회심의 기쁨에 찬물을 끼얹는가? 걱정 없이 살 수 있다는 비현실적인 약속이 그런 기쁨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겠는가? 회심이 해방시키는 짐은 죄의 짐이지 제자로서의 책임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얻음으로 그리고 침례를 통해 자신의 선택을 대중에게 공표함으로 모든 신자는 제자가 되는 길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대가를 지불할 만한 가치가 있는 보상을 베푸신다. 반면 세상은 그것을 따른 대가로 무엇을 주는가? 아무 것도 주지 않는다.

 

 

<부가설명> 하나님의 은혜는 아담 안에서 사망이 된 아담의 씨로 태어난 이 세상의 모든 아담의 후손들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기 위하여 말씀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오셔서 그 영원한 사망을 십자가에서 대신 처리하시고 3일만에 부활하심으로 생명과 썩지 않는 것을 드러내어 누구든지 예수를 믿기만 하면 이 생명을 얻어서 영생하도록 한 것이다. 이것은 사람의 노력 없이 된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것이 사망이 된 사람의 노력으로 되겠는가. 죽은 자가 스스로 노력해서 살아날 수 없다. 생명을 주실 수 있는 분이 생명을 줄 때 살아나는 것이다. 그러나 살아난 사람은 예수께서 주신 그 생명으로 생활해야 한다. 이것은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한다고 가르친다.(롬6:4) 예수의 생명으로 사망의 세상에서 살아갈 때에 사망의 세력은 우리가 얻은 그 생명을 포기하게 하려고 공격하는데, 그것이 바로 환난과 고통이다. 예수님으로부터 얻은 그 생명을 끝까지 지켜서 산 자의 땅에 들어갈 때까지 그것을 지키는 삶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고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이다. 사망의 세력이 주관하는 세상에서 이 생명을 완전히 지켜나가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끊임없이 구하여 예수님의 능력으로 이겨야 한다. 세상의 눈으로는 끊임없는 환난과 고통과 불이익과 불편함의 연속이다.

 

 

교훈: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그분을 영접하고 그분을 따라 고난의 길을 걸으며 자기에게 맡겨진 십자가를 져야 한다.

 

 

 

셋째날(화) 3월25일

 

훈련된 반응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고전 9:25).

 

 

1. 다음의 말씀을 분석해 보라. 눅 14:31~33, 고전 9:24~27, 히 12:1~4, 벧후 1:5~11. 이 말씀들은 제자의 삶에 대하여 어떤 사실을 알려주는가? 여기서 성경이 말하는 실상을 그대는 어떻게 경험해 보았는가?

 

[눅14:31~33] 또 어느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으로서 저 이만을 가지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32 만일 못할 터이면 저가 아직 멀리 있을 동안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지니라 33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고전9:24~27]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26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여 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히12:1~4]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4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

 

[벧후1:5~11]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8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9 이런 것이 없는 자는 소경이라 원시치 못하고 그의 옛 죄를 깨끗케 하심을 잊었느니라 10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 11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답: 부지런하고 힘써서 확실한 결말이 이를 때까지 달려가야 한다. 죄와 싸워 이겨야하고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아야하며 자기를 처서 복종시키면서 우리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해야 한다.

 

 

제자도의 대가는 훈련을 포함한다. 모든 충동, 생각, 야망, 욕망은 그리스도께 굴복되어야 한다. 모든 소유, 육체적이거나 비가시적인 모든 재능과 능력, 가치 있는 모든 것은 그리스도의 명령 아래에 있어야 한다. 우리가 그분께 굴복시키지 않는 것은 불가피하게 우상이 되거나, 우리를 배도로 이끌 가능성이 있다.

 

그리스도는 진실로 우리에게 성격적 결함을 극복할 능력을 베푸신다. 모든 식욕, 감정, 지적 경향은 성령의 지도 아래에 있어야 한다.

 

바울이 몇 곳에서 사용했던 운동선수의 예를 주목하라. 늦게 달리고, 낮게 뛰고, 짧게 던지기를 열망하는 선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어떤 신자도 뒤를 바라보지 말아야 한다. 특히 지상의 주자들이 자신의 모든 노력과 훈련의 결과로 얻게 될 상과는 달리 우리의 영적인 경주에 걸린 운명이 영원한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경주자들은 체력을 약화시킬 모든 방종을 버리고 엄격하고도 계속적인 훈련으로 근육을 강인하게 훈련시킴으로, 경기 당일에 최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하였다. 그렇다면 그들의 영원한 이익이 걸려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식욕과 정욕을 이성과 하나님의 지배 아래 두는 것은 얼마나 더 중요한 일인가! 그리스도인은 결코 오락과 사치와 안일로 인하여 그의 주의를 다른 데로 돌리지 말아야 한다. 그의 모든 습관과 정욕은 가장 엄격한 훈련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에 의하여 계발되고 그분의 성령의 지도를 받는 이성이 마음의 고삐를 잡아야 한다”(사도행적, 311).

 

 

<부가설명> 아기가 태어나서 성장하는 것은 그 아기 속에 역사하는 생명이다. 사산(死産)된 아기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때부터 부패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생명을 가지고 태어난 아기는 성장한다. 성장하는 과정에 생명을 위협하는 일들이 무수하다. 사방이 위험으로 가득하다. 질병과 거친 환경과 음식의 위험들이 있다. 기어 다닐 만하면 아무것이나 손에 닿는 대로 입으로 가져간다. 엄마가 보지 못했으면 뱃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뱃속에 들어가서 괜찮은 것이라면 몰라도 위험한 것이라면 건강과 생명의 위험을 맞게 된다. 그리스도인이 중생한 후에 영적으로 성장하는 과정도 이와 다를 것이 없다. 어느 정도 성장하면 이제 생명의 작용을 따라 생활하게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삶은 성숙할수록 사단의 공격이 더욱 집요하게 된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그럴수록 더욱 힘써 싸우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헌신하고 충성하게 된다. 생명이 그렇게 이끌어가기 때문이다. 우리는 새 생명으로 행하는지(롬6:4) 늘 검증해야 할 것이다.

 

 

교훈: 영원한 상을 얻고자 하는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신의 모든 재능과 소유 심지어 생각과 욕망까지 다 그분의 지배 아래 두는 엄격한 훈련을 받아야 한다.

 

 

넷째날(수) 3월26일

 

대가를 비교함

 

 

기업들은 비용 편익 분석을 통해 제안된 기획들의 성공 가능성을 탐색한다. 구체적인 기획안들은 투자에 대한 보상을 가져올 만한 요소들을 담고 있는가? 수익이 지출에 비해 큰가? 자주 적용되는 또 다른 기준은 지속성이다. 그 기획은 지속적인 보상을 제공하는가?

 

제자도의 보상 역시 대가와 비교하여 평가되어야 한다. 대가에는 정서적 고통, 사회적 거부, 신체적 고문, 경제적 박탈, 수감 그리고 죽음이 포함될 것이다. 누구든지 제자의 길에 들어서는 이는 필수적인 투자를 조심스럽게 살펴야 한다.

 

 

1. 제자의 길에 따르는 대가에 대하여 다음 성경절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마18:8~9]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눅6:35]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빌2:3]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답: 단호하게 죄를 버려야 한다는 것과, 자아를 낮추고 희생을 즐겁게 감당하라고 가르친다.

 

 

2. 다음 성경절은 이익에 대하여 무엇을 말하는가?

 

눅 18:28~30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요 14:1~3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계 22:1~5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답: 영생의 보상과 하나님 나라에서 왕 노릇할 것이 이익이고 보상임을 약속한다.

 

 

당연히 예수님을 따르는 대가는 클 수 있으며 아마도 사람이 치를 수 있는 가장 큰 대가일 수도 있다. 만약 그리스도를 따르면서 큰 대가 또는 아무 대가도 지불하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믿음에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렇다. 우리가 이생에서 무엇을 얻든, 무엇을 성취하든, 무엇을 만들든 다 일시적이어서 영원히 지속되지 않고 허무하게 사라질 것이다. 반면 우리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예수님을 통해 얻을 영생은 이 세상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그 무엇보다 훨씬 가치가 있다.

 

 

<부가설명> 그리스도인의 희생은 현실적이고 보상은 미래의 약속이다. 현실은 눈앞에 있고 미래는 손에 잡히지 않는 곳에 있는 것 같기 때문에 유혹에 무너지기가 쉬운 것이다. 옛 말에 주먹은 가깝고 법은 멀다고 한 것처럼 환난과 핍박과 고통은 가깝고 약속한 보상은 예수님 재림하실 때 이르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서 미래를 현재처럼 살아야하는데 현실적으로 너무 힘 드는 사상이다. 그래서 예수께서 현재의 고통에 대하여 분명히 가르치신 것이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정직해야 한다는 교과 저자의 말이 바로 이런 점이다. 엄밀히 따지면 세상에서 아무리 복을 받았다는 삶을 할지라도 죽음 앞에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 가장 확실한 현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믿고 복 받읍시다라고 말할 때 그 복을 미래적인 것으로 암시했을지라도 듣는 사람은 현실적인 복으로 생각하게 되기 쉽다. 우리 스스로 복음을 바르게 알고 성경의 복의 실상을 바르게 깨닫고 바르게 전해야 한다. 재림은 너무나 확실하고 영생은 분명하고 하나님의 나라는 가장 확실한 현실인 것을 믿음으로 알고 생활하자.

 

 

교훈: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우리는 엄청난 대가를 지불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받을 보상과 비교하면 그만한 대가를 지불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

 

 

다섯째날(목) 3월27일

 

더 좋은 부활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히 11:35).

 

 

1. 히 11:32~12:4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은 제자도의 대가와 보상에 대하여 그대에게 개인적으로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히11:32~12:4]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와 다윗과 사무엘과 및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33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34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35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36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37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38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39 이 사람들이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니 40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12: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4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

 

 

답: 환난과 시험과 죽임을 당하지만 세상보다 큰 사람들이 되어 하나님이 예비한 더 좋은 것을, 더 좋은 부활로 얻게 될 약속이 있다.

 

 

정말 놀라운 개념이 위의 성경절에 계시되어 있다. 어떤 의미에서 제자가 되는 것과 제자를 양성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더 좋은 부활”이라는 한 가지로 압축된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이유는 죄와 고통과 죽음이 없는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구속함을 얻으리라는 약속과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우리는 예수님의 삶과 죽음, 부활과 대제사장 봉사를 통해 명확해진 이 소망과 약속이 우리에게 주어졌기 때문에 다른 이들에게 동일한 소망과 약속을 제시하기를 원한다. 결국 우리가 예수님의 재림 때에 생존해 있지 않는 한, 대쟁투가 끝나기 전에 첫째 부활이든 악인의 둘째 부활이든지 맞이하게 된다. 우리는 무엇이 더 좋은 부활인지 알고 있다. 우리가 그 부활에 참여할 뿐 아니라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여 다른 이들도 그 부활에 참여하도록 인도하는 것 말고 무엇이 더 중요하겠는가?

 

추수 때가 무르익었다. 수많은 사람이 제자의 길로 부름을 입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복음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았을 뿐 아니라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마지막 경고의 기별인 계시록 14장의 세 천사의 기별, 곧 ‘현대 진리’로 알려진 복음으로 인해 복을 받았다.

 

우리가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이러한 진리를 가지고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다시 말해 추수할 일꾼들은 어디에 있는가? 그리스도 곁에 서서 기꺼이 위험을 감수할 자들은 어디에 있는가? 그대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제자가 될 뿐 아니라 제자를 양성하는 자가 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겠는가?

 

 

<부가설명> 현재 우리나라나 미국이나 소위 문명국가들에는 복음의 초기에 있던 그런 핍박은 없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물질적으로 문화적으로 고난이 없는 것은 아니다. 또 앞으로 옛날과 같은 환난과 핍박이 있을 것이라는 예언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 모든 것을 감안하고도 우리는 예수의 제자가 되었다. 우리의 위치를 잘 지켜야하고 영원한 생명 부활의 소망을 증거하는 제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각각 받은 은사가 다르다. 자기에게 주신 은사를 따라 믿음을 분량대로 최선을 다해 충성하는 사람으로 생활 현장에서 증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정신으로 믿음 생활하는 모든 성도에게 성령의 역사가 강하게 임할 것이다. 아멘.

 

 

교훈: 우리는 더 좋은 부활에 대한 확실한 약속과 소망이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뿐 아니라 제자를 양육하는 자가 되라는 초청을 받아들인다.

 

 

여섯째날(금) 3월28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사도행적>, 219~220 “지경을 넘어서”, 241~242 “베뢰아와 아덴”을 읽어 보라.

 

 

“불이 하늘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온다. 땅이 깨어진다. 땅의 깊은 곳에 감추었던 무기들이 터져 나온다. 땅의 깨어진 모든 틈에서 맹렬한 화염이 터져 나온다. 모든 바위가 불이 된다. 풀무 불처럼 불타는 날이 마침내 왔다.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것들이 타버린다(말 4:1, 벧후 3:10 참조). 땅의 표면은 마치 용해된 하나의 덩어리, 곧 하나의 거대한 끓는 큰 불 못처럼 된다. 이때는 경건치 않은 자들의 형벌과 멸망의 때이다. ‘이것은 여호와의 보복하시는 날이요 시온의 송사를 위하여 신원하시는 해’(사 34:8)이다.

 

악인들은 땅에서 그들의 보응을 받는다(잠 11:31 참조).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극렬한 용광로 불같은 날이 이르리니 …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말4:1) 사를 것이다. 어떤 자들은 한순간에 멸망당하지만 어떤 자들은 여러 날 동안 고통을 받는다. 모든 사람은 ‘그들의 행위대로’ 형벌을 받는다”(각 시대의 대쟁투, 672~673).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기독교 신념을 고수하다 사망한 디트리히 본회퍼는 <제자도의 대가(代價)>라는 유명한 책을 저술하였습니다. 아래에 그 책에서 발췌한 몇 구절을 옮겨 놓았습니다. 이 글들은 이번 주에 우리가 공부한 내용과 얼마나 비슷합니까?

 

“옛 생애는 뒤에 버려지고 완전히 굴복된다. 제자는 비교적 안전한 삶에서 완전히 불안전한 삶(사실은 예수님과 교제를 나눌 수 있는 절대 안전과 안정)으로 끌려간다.…”

 

“만약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려고 하면 우리는 분명한 단계를 거쳐야 한다. 부르심을 따르는 첫 번째 단계는 제자의 삶을 이전 삶에서 잘라내는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십자가가 지워져 있다. 모든 사람이 겪어야 할 첫 번째 그리스도의 고난은 이 세상에 속한 것들을 포기하라는 부르심이다.… 그리스도께서 한 사람을 부르실 때, 그분은 와서 죽으라고 그에게 분부하신다.”

 

※ 본회퍼는 제자도의 진시를 잘 알고 있었던 같다. 우리가 공부한 내용과 다를 것이 없다. 다만 보상에 대한 것은 여기 발췌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것 말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