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즉 저희가 믿지

2009년 11월 4일 수요일 - 선교사 양성 대학의 등장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10:14


이 구절은 좋은 질문을 던진다. 1890년대에 전체 기독교계와 제칠일안식일재림교회는 믿음의 묘판인 하나님 말씀 가르치는 일을 널리 확대하기 위한 전례 없는 조치를 취하기 시작하였다. 개신교도들은 선교 사업 확대를 위한 준비 작업의 일환으로 선교사 양성 대학과 성경 학교를 설립하였다. 이들 학교는 국내외 선교지에 파송될 많은 인력을 가능한 한 신속하게 양성하기 위함이었다. 신설 학교 기관은 주로 실습과 성경 지식 습득에 초점을 맞추었다. 최초의 선교사 양성 학교는 1883년에 세워진 국내외 파송 선교사 및 전도사 양성대학(Missionary Training College for Home and Foreign Missionaries and Evangelists)이었다.


재림교단의 교육 기관 설립도 기타 개신 교회와 비슷하게 전개되었다. 재림교단의 외방 선교는 교단의 교육 기관 확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교단은 교육 기관 육성을 통해 급속히 전개되는 세계 선교에 필요한 인력을 충원하고자 하였다. 선교사 양성 학교를 최초로 설립한 재림신도는 존 하비 켈로그(John Harvey Kellogg)였다고 볼 수 있다. 그는 1889년에 새니테리엄 의료 선교사 양성 학교(Sanitarium Training School for Medical Missionaries)를 세웠으며, 1895년에는 아메리칸 메디컬 미셔너리 칼리지(American Medical Missionary College)를 설립하였다.


한편, 아본데일 기독교 사역자 학교(Avondale School for Christian Workers, 1894), 서더랜드와 퍼시 메이건이 세운 선교사 양성 학교들, 기타 재림교단의 선교사 양성 대학(워싱턴 미셔너리 칼리지, 임마누엘 미셔너리 칼리지, 서던 미셔너리 칼리지, 로마린다 의료 선교사 양성 대학 등)들이 곧이어 설립되었는데, 모두 복음 선교 사업의 파생물로 세워진 개신교 선교사 양성 학교와 비슷한 취지로 설립되었다.


재림교단의 선교 사업 확대는 적어도 두 가지 면에서 재림교단의 교육 사업 성장에 영향을 미쳤다. 먼저, 북아메리카에서 학교와 학생 수가 크게 증가하였는데, 이는 교단의 초기 사역자 대부분이 미국인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둘째, 재림교도들은 전세계에서 학교를 설립하기 시작하였는데, 각국 교회가 현지에서 필요한 인력을 자체 충원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1900년 무렵에는 재림교단의 교육 기관이 양적으로 폭발하였을 뿐만 아니라 교육 제도 또한 국제화되었다.


1890
년대에 재림교단이 세운 교육 기관들이 선교 사업을 염두에 두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우리 시대의 과제 또한 선교 사업을 교단 내 각급 교육 기관의 목표로 삼는 일이다. 선교의 성격은 지난 100년 동안 변해왔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희망을 전세계에 알려야 하는 필요성은 변하지 않았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기도하고 믿는 일이다. 깨어 기도하라. 깨어라, 그리고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과 협력하라.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고전 3:9)이라는 사실을 마음에 기억하라. 그대들은 그대들의 기도에 일치한 말과 행동을 하라. 시험이 그대가 진실한 믿음을 가졌는지 아니면 그대가 형식적인 기도를 하고 있는지를 드러내 줄 것이며 이 둘의 차이는 결정적인 것이 될 것이다(COL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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