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이 돌 위에

2009년 10월 17일 안식일 - 스미스는 어떻게 되었는가?

 


무릇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20:18


유라이어 스미스도 버틀러처럼 미네아폴리스 집회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매우 실망하여 1888년 오랫동안 봉직했던 대총회 서기직을 사퇴하였다. 그러나 <리뷰> 지의 편집장 자리는 유지하였다. 그는 1897년까지 그 자리를 지키며 대부분의 기간을 예언 해석과 기타 문제와 관련하여 A. T. 존즈와 설전을 벌였다. 하지만 그 기
간 동안 <리뷰> 지의 편집장 자리는 유지하였어도 카리스마 넘치는 존즈의 인기를 따라잡지는 못하였다. 존즈는 1892년 무렵 재림성도 사이에서 가장 주목 받는 목회자가 되었다. 스미스는 1897년에 교단이 존즈를 <리뷰> 지 편집장으로 임명하고 자기는 부편집장으로 임명하자 큰 수치로 받아들였다.


1888
년 이후, 스미스는 왜고너가 갈라디아서에 언급된 법을 십계명의 관점에서 설명하고, 엘렌 화잇이 율법과 복음에 관한 왜고너의 설명을 지지하자 받아들이지 못하고 매우 곤혹스러워하였다. 미네아폴리스 집회가 있고 나서 몇 년 동안 스미스는 엘렌 화잇의 저서를 불신하는 일에 앞장섰다. 그러나 화잇 부인은 스미스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에게 계속 편지를 썼으나 소용이 없었다. 그러나 1891 1월 스미스는 미네아폴리스 집회에 대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였다. 화잇 부인은그가 [그리스도] 반석 위에 떨어져서 깨졌다.”라고 말하였다.


스미스는 반석 위에 떨어졌으나 그 반석 위에 선 것은 아니었다. 그의 율법주의적 신앙관이 여전히 문제를 일으켰다. 그러나 1901년 교회 지도자들은 그를 다시 <리뷰> 지의 편집장으로 임명하였다. 엘렌 화잇은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그가 또다시 편집장이 되었다. 당연하다. 몇 년 전에 존즈가 편집장이 되고 스미스가 부편집장이 되었을 때, 나는 상심하였다. 이제 다시 스미스가 편집장이 된 것을 보고 나는 울며하나님이여 감사하나이다.’”(편지 17, 1902)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스미스 안에는 여전히 예전의 스미스가 남아 있었다. 스미스는 편집자가 된 후 얼마 안 가서 또다시 갈라디아서 논쟁을 제기하였으며, 그 결과 <리뷰> 지 편집장에서 해고되고 말았다. 그는 그 충격으로부터 다시 일어서지 못하였다. <리뷰> 지는 스미스가 중병이므로 편집장이 경질되었다고 밝혔다. 스미스는 1903 70세를 일기로 잠들었다.

 

주님이여, 우리가 오늘날 우리 뜻대로 살지 않게 도우소서. 우리의 모든 것을 당신께 맡기되 우리가 가장 아끼는 생각마저 당신께 맡기도록 도와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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