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25일 화요일

 

예수가 높냐, 일본 천황이 높냐?”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마 5:11,12).


우리 재림교회는 일제 말기에 수난의 소용돌이에 더욱 크게 휩싸여야 했습니다. 선교사들이 다 떠난 후 1941년 2월 이래 최태현 목사가 조선합회장의 직을 맡아 애를 쓰면서 어려운 고비들을 헤쳐 나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13회 총회가 1943년 1월에 열렸고 새로이 오영섭 목사가 합회장에 선임되어 새 지도부가 들어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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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회 연합회 총회, 서울 <194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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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섭 목사


하지만 총회가 끝난 지 불과 3주일도 안 되어 신․구지도부 6명이 1943년 2월 4일에 일경(日警)에 의하여 서울 종로경찰서에 연행․구속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은 일제 군부가 의도적인 계획 아래 추진한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일제는 기독교 각 교파를 통합하여「조선혁신교단」을 조직하고 ‘재림신앙’을 문제 삼아 우리 재림교회를 말살시키기로 했습니다. 이 혁신교단에서는, 역사가 이만열 교수가「한국 기독교사 특강」이라는 저술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일제의 지시를 따라 성경에서 모세 오경과 요한계시록을 삭제”했습니다. 그 이유는 “모세 오경은 민족주의적 성격이 강하며 요한계시록은 재림사상이 강조되고 있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때였는지라 일경은 도무지 사리에 맞지 않는 전시 보안법을 적용하여 우리 지도자들을 무자비하게 고문했습니다. 심지어 “예수가 높냐, 일본 천황이 높냐?”, 또는 “예수가 재림하면 일본 천황도 멸하느냐?”라는 유치한 질문을 해서라도 혐의를 찾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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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현 목사


이러한 비인도적인 고문과 심문 과정에서 6월 2일 오전에 최태현 목사가 인사불성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같은 위급 상황이 발발하자 일경은 그를 급히 경성요양병원으로 이송시켜 응급치료를 받게 했지만 끝내 소생하지 못하고 그 날 오후 8시 45분에 마지막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이 위난의 시국을 대처하기 위하여 조선합회는 즉시 합회장 대행위원들을 세워 다각적인 시도를 하였으나 불행하게도 일제 군부의 목적대로 교회 해산의 과정을 밟는 비극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 재림교회가 조선혁신교단에 통합되어 배도의 길을 걷게 하지 않으시고 차라리 해산되어 수난의 길을 걷게 하신 ‘뜻’은 두고두고 깊이 헤아려야 할 주제가 되고 있습니다.


주님, 우리 교회가 배도의 길에 들어서지 않고 수난의 길을 걷게 해 주신 것 아무리 생각해도 감사합니다. 옛 성도 신앙 따라서 죽도록 충성하게 하소서.

Blessing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