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26일 수요일

 

타도 타 버리지 않는 숲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사 43:1-3).
 

교회사가(敎會史家) 민경배 교수는「한국 기독교회사」, 제21장에서 “타도 타버리지 않는 숲”이라는 소제(小題) 아래 “1941년 이래 내내 질식할 듯한 박해에서 신음하던 안식교가 최태현 목사를 비롯한 순교자를 내다가 교회의 해산을 명령받은 것은 1943년 12월 28일의 일이다.”라고 기술했습니다.


조선합회는 1943년 2월 4일에 합회장을 포함하여 6명의 지도부가 종로경찰서에 연행․구속되자 즉시 합회장 대행위원 3인을 세웠습니다. 이들 대행위원들은 선교사업을 지속하면서 구금된 지도자들의 석방을 위하여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오리혀 일제 군부는 우리 지도자들을 전시 보안법 위반으로 몰아붙이고 재림교회를 적성기관(敵性機關)으로 처리하고 교회재산까지 몰수하려 했습니다.


이러한 위협 속에서 1943년 12월 27일에 3인의 대행위원들과 1년 가까이 구금되어 온갖 핍박을 받아 지칠 대로 지쳐 버린 5인 지도자들이 경성요양병원에서 일제가 강요하는 대로 교단 해산성명서에 서명 날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어, 다음날인 28일에는 해산성명서를 발표하고 각 교회에 발송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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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고를 치른 교회 지도자들, 좌측부터 박창욱, 이성의, 김례준, 오영섭, 김상칠(최태현 목사는 옥중에서 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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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해산 성명서, 1943.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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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해산을 알리는 서한, 1943. 12. 30>


해산 후에 합회와 선교사 사택들은 경성제국대학에 40원에 매각해야 했고, 시조사는 매일신보사에 10만원에 임대차계약을 맺고 넘겨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경성요양병원은 재단법인 결핵예방협회 조선지부에 40만원에 양도해야 했습니다. 이 병원은 총독부 고관들의 요양원인 서광장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일제는 이렇게 매각된 자금 중에서 일부를 국방헌금 명목으로 징수까지 했으니 기막힌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우리 지도자들은 나머지 자금을 가지고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를 의지하면서 재단법인 자동의숙을 조직하고 면목리에 소재하고 있던 경성삼육원 자리에 자동농사학교를 세워 경영하는데 사용했습니다. 사실 모든 교회까지 매각하도록 강제했으나 이미 교인이 없어 돌보기 어려운 곳만 몇 곳 골라서 매각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제의 어떤 총칼도 결코 해산시킬 수 없는 교회가 곳곳에 산재하여 있었습니다. 그 교회란, 마치 설한풍의 송죽과도 같이, 어떤 상황에서도 진리와 의의 횃불을 높이 들 수 있는 성도들이었습니다. 
 

주님, 우리 한국 재림교회로 하여금 타도 타버리지 않는 숲이 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소중한 사실 결코 잊지 말게 하소서.

Blessing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