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27일 목요일

 

광야교회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일천이백육십 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계 12:6).

해방의 날까지, 강제 해산을 당한 날부터 1년 반 남짓 되는 기간 동안, 재림교회는 암흑기를 보내야 했습니다. 이때에 목회자 또는 교역자가 할 수 있는 것은 불행하게도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교단의 해산과 함께 감시의 대상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암울한 상황에서 제2차세계대전을 아마겟돈 전쟁으로, 요한계시록 16장 13절이 언급하고 있는 세 더러운 영들 가운데 용을 일본으로, 짐승을 이탈리아로, 거짓 선지자를 독일로 곡해하고 재림성도들을 미혹하여 태백산 또는 지리산 등지로 이끌고 들어가는 이들이 생겨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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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철


이러한 때에 조경철 집사가 분연히 일어나 마태복음 24장 14절의 예언이 아직 성취되지 아니했으니 일단 한적한 곳에 피신해 있다가 전쟁이 끝나면 천국 복음을 전도하는데 힘을 써야 할 것을 역설했습니다. 이영린 목사가「한국 재림교회사 연구」라는 논저에서 언급한 대로 “과연 그것은 달관(達觀)이었”습니다. 조 집사는 여러 재림성도들과 더불어 강원도 회양군 난곡면의 하송관으로 피신하여 공동체를 이루고 재림신앙의 불을 보존하고 또한 퍼뜨리는 일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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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내현(좌), 신태식(우)        


또한 신태식 선생과 반내현 선생은 서로 동지가 되어, 어찌 할 바를 알지 못하고 방황하던 재림성도들, 특히 재림청년들을 경기도 가평군 북면 적목리라는 두메산골로 인도하여 유무상통의 공동생활을 했습니다. 그 수는 무려 70여명에 달하기까지 했습니다. 배급 식량이 매우 적고, 벌목하는 일이 매우 고된 것이어서 참으로 핍절한 생활이었지만, 이들은 ‘신앙의 자유!’ 이 한 가지가 보장된 사실만으로 서로 위로하고 사랑하는 가운데 모든 것을 기쁘게 감내했습니다. 이들에게 진정한 양식은 성경과 예언의 신이었습니다. 이들의 심령 속에는 재림신앙이 하늘 높이 불타올랐습니다. 이리하여 이곳이 전국에 산재한 재림신자들에게 영적 구심점이 되기까지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과거 “용이 남자를 낳은 여자를 핍박”할 때에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보호받게 해 주셨던 것처럼(계 12:14) 일제에 의하여 강제 해산을 당하여 곤경 아래 빠진 재림성도들로 하여금 하송관이라든가 적목리 등 정말 “광야” 같은 곳으로 피하여 보호받게 해 주셨던 것입니다.
 

주님, 우리의 선구자들은 당신을 전적으로 믿고 따랐기에 어떤 경우에도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도 그와 같은 큰 믿음과 큰 순종의 정신을 갖게 하소서.

Blessing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