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2009년 8월 7일 금요일 - 새로운 문제들(2)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6:16


어제 우리는 재림교회 목사들은 다른 교회신자들이 다 믿는 교리보다는 제칠일 안식일 같은 자기들을 구별하는 교리를 전하는 일에 더 관심이 있었음을 살펴 보았다.


그들이 새로운 지방에 들어가 유명 목사를 상대로 공개 논쟁을 벌이는 방법은 그런 대로 쓸 만해 보였다. 텔레비전이 없는 세상에서 두 목사 사이에사람이 지옥에 들어가면 얼마나 오래 고난을 당해야 하는가?’ 하는 따위의 논쟁이  벌어지면 아마 그 지방 최고의 구경거리였을 것이다. 아무튼 재림교회 목사들은 청중을 불러 모으는 일에 별 어려움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한 40년 간 재림교회의 특수 교리를 논쟁적으로 강조하고 일반 그리스도교 교리는 소홀히 한 결과 두 가지 폐단이 생겨났다. 그 하나는 일부 신자들의 기질이 매우 전투적으로 바뀌면서 1888년의 기별을 둘러싸고 일어났던 사태를 통해 본 것처럼 교단의 골칫거리가 되었다.


그 뿐만 아니라 40년에 걸쳐 특수 교리만 지나치게 강조하고 공통 교리는 소홀히 한 결과 재림교회는 일반 기독교와의 일체감을 상실하게 되었다. 1880년대 중반에는 이 문제가 심각한 수준에 달하였다. 재림교회는 재림 신앙의 특성을 외치는 일은 잘하였으나 재림 신앙이 그리스도교 신앙이라는 더 큰 꾸러미를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재림 신앙은 방향 수정이 필요하였다. 미국 서부 출신의 두 젊은 목사인 A. T. 존즈와 E. J. 왜고너가 그 작업을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그들이 그리스도와 믿음에 보다 큰 비중을 두고 율법에는 덜 두드러진 역할을 배정하는 교리적 조정을 하는 것같이 보였다.


그러나 교단의 지도자들인 G. I 버틀러와 유라이어 스미스는 그런수정을 하나의 중요한 신학적 지진으로 보았다. 그들은 새로운 가르침들이 율법과 행위를 강조하던 역사적 재림 신앙을 전복시키려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 결과 그들은 힘을 다해 새 것과 투쟁하였다. 아직 세계적으로 교세가 2 5천에 불과했었고, 목사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위치에 있었으므로 그들의 힘은 결코 적지 않았다.

 

주여, 주님과 동행하는 우리로 하여금 신학적 균형에 대한 역사적 교훈을 배우도록 도와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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