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츠가 궁극적인 개혁을 발견함

2월 3일 화요일 베이츠가 궁극적인 개혁을 발견함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벧후 3:13.

베이츠는 교회 목사를 통해 임박한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가르침을 처음으로 접하였다. 그러나 이 개념이 1839년까지는 별로 그의 마음속에서 발전이 없었다. 그 해 가을에 그는 그리스도께서 1843년경에 오실 것이라는 윌리엄 밀러의 설교에 관하여 들었다.

베이츠가 이 생각에 대해 반대했을 때, 누군가 그에게 밀러가 이 점을 증명하기 위해 대단히 많은 성경절을 사용하였다고 귀띔해 주었다. 곧 베이츠는 재림에 관한 일련의 집회에 참석하였고 "구세주의 재림의 '시기'에 대해 이렇게 많은 것들을 보여 줄 수 있음에 대해 놀랐다." 첫 번 강연 후 귀가길에 그는 아내에게 "이것은 진리"라고 선언하였다.

그 다음 그는 밀러의 <1843년경에 있을 재림에 대한 성서적, 역사적 증거>를 읽었다. 베이츠는 전심으로 밀러의 가르침을 수용하였고, 밀러의 재림 운동을 포용하고 참여하여 후일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이 될 사람들 중 첫째가 되었다. 밀러주의가 곧 베이츠의 삶을 주관하였으며, 이전 그가 사회를 개혁하는데 바친 시간을 차지하였다. 이 시점에서 친구들이 베이츠에게 왜 더 이상 절제와 노예 해방 모임에 참여하지 않느냐고 질문하였다. 베이츠는 친구들에게, "내 대답은, 구세주 재림의 교리를 포용함에 있어, 나는 나와 다른 사람들이 이 사건을 위해 준비하는데 모든 시간을 바쳐야 함과, 이 교리를 수용한 모든 사람들이 마땅히 절제와 노예 제도 폐지의 옹호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베이츠는 그의 친구들에게 "문제의 근원을 다룰 때 더 많이 성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하였다. 사실, 여러 개혁 단체들이 제거하고자 한 악습들은 죄악적 삶의 결과였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재림은 "갑작스럽고 완전히 악을 끝낼"것이었다. 그래서 밀러주의는 베이츠에게 "궁극적인 개혁"이 되었다. 그는 "부패한 인류가 부패를 개혁할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그리스도의 재림이 유일하게 참되며 영구적인 해결책이 될 것이다.

초장부터 베이츠는 1840년에 개최된 첫 총회를 소집한 16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또한 1842년 5월 모임의 의장으로서 밀러주의의 중요한 지도자가 되었다.

이러한 책임들이 그로 하여금 1840년대 후반에 안식일 준수 재림교를 태동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게 하였다.

하나님께서 베이츠의 삶을 걸음마다 인도하셨다. 또 이분이 동일하게 우리의 삶을 인도하신다. 우리의 임무는 앞서 뛰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인도하심을 매일 따라가는 것이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당신의 변함없는 보호하심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기를 바라시는데, 그것은 우리를 이끌어 내어 친히 교제하기를 원하시는 까닭이다(보훈,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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