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를 치료하여

2009년 6월 17일 수요일 - 존 하비 켈로그의 등장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내가 너를 치료하여 네 상처를 낫게 하리라.  렘 30:17

역동적, 힘찬, 꿈을 가진 등의 낱말들은 1876년 배틀크릭 요양원 원장으로 부임한 23세의 청년 존 하비 켈로그(John Harvey Kellogg)를 가장 잘 묘사하는 수식어였다. 그는 5피트 3인치의 단신이었으나 그에게 부여된 무슨 일이든 활기차게 해치우는 순전한 기개로 부족한 외모를 극복하였다.
켈로그는 처음에 의사가 될 마음은 없었다. 그가 정말 원한 것은 교사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제임스 화잇이 켈로그와, 화잇의 두 아들 에드슨과 윌리에게 학자금을 대주기로 하여 켈로그는 1872년 6개월 과정의 트랄(Trall) 의사의 위생치료대학에 입학하였다. 그는 의사 학위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더 공부하고 싶은 의욕을 품게 되었다.
다시 화잇 목사 내외로부터 학자금을 후원 받은 켈로그는 1년 동안 미시간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이듬해에는 뉴욕의 벨뷰 병원 의대(Bellevue Hospital Medical College)로 가서 최종 학년을 마쳤다. 아마 벨뷰 병원 의대는 당시 전 미국에서 가장 선두를 달리는 의대였을 것이다. 1875년 그 곳에서 과정을 마친 켈로그는 윌리 화잇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요즘 큼직한 양가죽[명문 의대 졸업장]을 한 장 받았더니 내 몸집이 한 50파운드는 불어난 기분이야. 음, 이 양가죽은 진짜야. 네가 받은 위생 치료 수료증 같은 가짜 졸업장과는 다르지.”
1875년 여름 켈로그는 배틀크릭으로 돌아와 즉시 요양원에서 일하기 시작하였다. 그 다음 해에는 자신이 제시한 1년만 일한다는 조건으로 그 기관의 원장이 되었다. 그러나 그가 거기서 67년 간 일하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1876년 그가 배틀크릭 요양원 원장으로 부임할 때 환자는 20명이었다. 그 중 여섯은 전임 원장을 따라 나갔고, 두 사람은 애송이 의사 얼굴을 한번 쳐다보고는 그대로 떠나버렸다. 그래도 켈로그는 개의치 않았다.
몇 달 안에 그의 환자 수는 평상시의 두 배로 증가하였고, 1877년에는 새 건물을 증축해야 하였다. 그 공사는 세기가 바뀌면서 ‘배틀크릭 새니타리움(Battle Creek Sanitarium)’으로 유명해진 기관 건축 계획의 시초였다. 이 기관은 미국에서 가장 크고 가장 유명한 병원들 중의 하나로 발전하였다.
한편, 켈로그는 여가 시간을 이용하여 무려 50여 권에 달하는 저서를 냈고, 콘플레이크와 콜드 시리얼 산업을 고안하였고, 최첨단 의료 기술을 개발하였으며,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는 외과의사가 되었다.
하나님은 이 단신의 거인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축복하셨다. 언제나 하나님은 자기 발전을 기뻐하는 자들을 축복하신다.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굳게 붙잡고 우리 자신을 전적으로 그 말씀에 굴복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목적이 성취될 것이다 (COL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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