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이어 스미스

2009년 5월 4일 월요일 - 유라이어 스미스

 


또 복음이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니라.  막 13:10

유라이어 스미스(1832-1903)는 우리 재림 기별을 인쇄 매체를 통해 세상에 전파하는 일에 가장 앞서 달려간 재림신자들 중 한 사람이다.
그의 유년기는 아주 험난하였다. 4세 때, 그는 왼쪽 허벅다리 중간 이하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아야 했다. 그것만도 큰 비극이었지만, 그가 29분 동안 수술 받은 장소는 자기 집 부엌의 식탁이었고 진통제도 없었다. 그를 위로한 것은 그를 붙잡고 있는 어머니의 손길이 전부였다. 우리는 ‘그 좋았던 옛날’의 실상에 대하여 아는 것이 별로 없다.
유라이어의 모친은 밀러주의 신자가 되었고, 유라이어는 소년 시절인 1844년 10월 재림신자인 한 장로에게 침례를 받았다. 1844년 10월의 대소망은 그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그러나 예수의 재림이 무위로 끝나자 그는 재림 신앙을 포기하고 세상에서 잘 살기 위해 학업에 뛰어들었다. 재림 신앙으로 다져졌던 하늘에 대한 동경은 그의 시야로부터 점차 사라졌다.
16세 때, 그는 뉴햄프셔 주 엑제터(Exeter)의 필립스 아카데미에 입학하였다. 그 학교는 당시 가장 알아주는 중등 학교로 나라의 많은 명사들이 이 학교 출신이었다. 야심이 대단했던 청년 유라이어는 졸업 후 하버드 대학으로 진학할 생각이었다. 미국의 최고 학부에서 교편을 잡는 것이 그의 목표였고, 그의 지능은 물론 그 일에 적격이었다.
그러나 그 젊은 지성인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은 달랐다. 그의 모친의 생각 역시 달랐다. 우리는 몇 주 전, 유라이어의 누나인 애니가 어머니의 기도와 또 애니와 조셉 베이츠에게 주어진 꿈, 그리고 베이츠의 적극적인 전도 활동에 힘입어 안식일 준수자들에게 가담한 사실을 살펴보았거니와, 애니가 1852년 안식일 준수자들에게 가담한 후 재능의 사람 유라이어는 그녀의 감화력에 부딪쳐 분투하게 되었다.
드디어 1852년 9월, 20세의 청년 유라이어는 재림신자들의 집회에 참석하기로 동의하였고, 거기서 제임스 화잇이 설명하는 1844년 대실망의 배경과 제칠일 안식일을 채택한 이유를 들었다. 그 후 그는 두 달이 넘도록 그 주제를 깊이 연구하였다. 1852년 12월, 그의 부친의 사망으로 위기가 왔다. 현실과의 정면 대결을 통해 유라이어는 자신을 온전히 주님께 바쳤고, 주님은 그를 들어 크게 쓰셨다.

 

주님, 주님께 완전히 헌신하는 일이 왜 이렇게 어렵습니까. 오늘 저를 도우셔서 주의 일에 제 자신을 온전히 바칠 수 있게 하시고, 오늘 저를 축복의 도구로 써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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