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lasting-gospels.gif
letter-text.gif
line.gif
guide_img.gif

2월 7일 금요일 - 예수에게 깜짝 놀란 요한

guide_img.gif

  

 

 

 

 

"이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려 하시니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침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마 3:13~15).

침례 요한의 사역에서 가장 경악스런 일 중 하나는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러 그에게 나아가신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침례보다 더 능력 있는 침례를 베푸실 분이 예수라고 요한이 공공연하게 선포한 마당에 말입니다(마 3:11).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께서 성인이 되어 맨 처음 행한 일이 침례를 받으러 나타난 사건이었습니다. 요한이 충격받는 것도 이상할 게 없습니다.  
다음과 같은 점에서 예수의 행동은 쉽게 오해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요한의 침례는 자백을 동반하는 회개의 침례였습니다. 그런데 모든 구속의 계획은 전적으로 예수의 죄 없는 본성에 달려 있습니다. 예수님이 요한에게 침례를 요청했다면 예수 자신이 우리 모두와 같이 죄의 수렁에 빠져 있다는 것을 시인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생각이 여기에 미치고 보면 자신이 예수께 침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요한의 항의는 너무나 당연해 보입니다.
그렇지만 예수께서는 요한의 항의를 받아들이지 않고 “지금은 내가 하자는 대로 하여라”라고 지시하십니다. 그들의 관계가 바뀌는 시기는 당장이 아니라 미래에 예수의 주님 되심이 더 많이 드러날 때임을 암시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요한에게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다(15절)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의 말씀에는 예수의 침례가 그의 추종자들이 따라야 할 모본이 되었다는 사실이 일정 부분 암시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엘렌 화잇은 다음과 같이 진술한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의미로 침례를 받으신 것이 아니었다. 그는 죄인과 같이 되셔서 우리가 걸어야 할 걸음을 걸으시고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행하신 것뿐이었다”(소망, 111).
우리는 예수께서 개인적으로 전혀 무죄하였음에도 평생토록 죄인들과 하나가 되셨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는 공중 봉사를 시작하면서 요단 강가의 회개하는 죄인들 사이에 계셨고, 구속 사역을 마칠 때도 두 강도 사이에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는 진실로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마 1:23)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다만 이야기의 일부일 뿐입니다. 예수께서는 흐르는 요단 강에서 침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막 1:10, 행 8:38, 39)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따르는 자들도 모두 삶의 옛 방식에 대해 죽는 것을 상징하여 물의 무덤에 잠겼다가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도록 새롭게 일어나야 합니다(롬 6:1~4 참조).
침례는 예수님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하나님과 그의 왕국을 위해 자신의 삶을 완전히 헌신하기로 결심했음을 나타내 보이는 자각적인 선택의 표시인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