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1.  21 (금)

2008년 11월 21일 금요일

 

“또 내가 보니 한 천사가 해에 서서 공중에 나는 모든 새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와서 하나님의 큰 잔치에 모여 왕들의 고기와 장군들의 고기와 장사들의 고기와 말들과 그 탄 자들의 고기와 자유한 자들이나 종들이나 무론 대소하고 모든 자의 고기를 먹으라 하더라”(계 19:17, 18).

요한계시록 19장의 마지막(11~21절) 절반은 무시무시한 이상들을 포함하고 있다. 흰말을 탄 자가 피에 젖은 외투를 입고 모든 나라를 마치 미사일처럼 그 입에서 나오는 예리한 칼로 치고 있다. 요한계시록의 여러 다른 곳에서도 그러했듯이 여기서도 매일의 삶을 위한 영적 지도를 받을 수 있으리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출애굽기에 언급된 재앙들은 애굽에 내려졌고, 이것들은 아직도 내려야 할 재앙들을 예표하고 있다. 출애굽기 이야기에서 바로는 하나님께서 새로운 재앙을 내리실 때마다 뒤로 물러선다. 두려운 나머지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겠다고 약속했다가도 하나님이 압력을 조금 늦추시면 곧 약속을 취소하였다. 바로는 하나님의 친절을 연약한 것으로 간주하고 기회만 주어지면 그 본연의 자세로 돌아갔다.

이슬람 과격주의자들은 그들이 하는 일이 옳다고 믿는다. 그들은 ‘거대한 사탄’과 싸우고 있다고 믿는다. 그들 대다수는 고아원이나 병원에 숨어서 죄 없는 아이들이나 여인을 방패로 삼고 문제가 커질 것 같으면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그들을 희생시킨다. 과격주의자들은 그러한 행동이 잘못이라고는 생각지 않고 더 큰 사명을 위해 필요한 희생이라고 생각한다. 사실상 그들은 적군이 평민을 죽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을 친절이나 자비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연약함이라고 판단해 버린다. 과격주의자들은 자기들을 반대하는 자들이 진정으로 그들의 목적을 깨닫는다면 반대자들 역시 방해가 되는 존재는 여인이건 아이이건 개의치 않고 다 살육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십자가 상의 예수님은 그분을 고문하는 자들과 또 그들과 함께한 자들을 멸하실 능력이 있으셨다. 2,000년 전 그 운명의 금요일에, 예루살렘에서 그분을 고문하던 자들은, 자진하여 모욕하고 때리고 마침내는 죽이기까지 허락한 예수님을 조소하였다. 그들은 예수께서 자신을 잡은 자들과 다투기를 거절하신 것마저도 그분이 연약한 증거라고 여겼다.
하나님은 일이 항상 이런 식으로 되지 않을 것을 알리시기 위해 요한계시록이 기록되게 하셨다. 사탄과 그의 추종자들을 향한 그분의 친절이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사탄의 날은 계수되고 있다. 주님이 베푸시는 친절은 연약하셔서가 아니라 우리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시기 위함이다. 끝날에 하나님께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들을 끝내실 능력이 충만하시다는 것과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실 것이다.

주님, 부당한 이들에게 어떻게 주님과 같은 친절을 나타낼 수 있는지 가르쳐 주십시오. 그리고 마지막 날이 올 때까지 저의 눈을 주님께 고정시켜 주십시오.

갈바리의 십자가는 사람들 위에 높이 들려 그들의 마음과 생각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럴 때, 모든 영적 기능은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받는 거룩한 능력으로 충전될 것이다. 그리고 또, 주님을 위한 진실한 사업에 힘을 집중시키는 일이 일어날 것이다. 일꾼들은 이 땅을 밝히는 산 대리자로서 세상을 향해 광선을 내뿜을 것이다(보훈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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