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2. 1 (월)

2008년 12월 1일 월요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우더라”(계 20:15).

하나님께서는 악한 자들의 멸망에 대하여 어떻게 느끼시는가? 귀찮은 존재를 없애서 속이 시원하실까? 아니면 이것이야말로 우주 역사에서 가장 어려운 순간이 될 것인가? 다음 이야기는 그 대답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고등학교에서 상담지도 교사로 일하는 셜리에게 어느 날 한 학생이 전화를 걸어왔다. “제니퍼가 그러는데, 아마도 선생님이 토드를 좀 확인해 보셔야 할 것 같아요. 그는 아주 절실하게 선생님의 도움이 필요할지도 몰라요. 오늘 정오에 제니퍼와 토드가 헤어졌거든요.”

토드는 셜리의 아들이었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간 그녀는 부엌 선반 위에서 빈 약병과 아들의 컴퓨터에서 메시지를 발견하였다. “죽음에 직면할 때 무슨 말을 해야 할지를 알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나는 무언가를 말해야만 한다고 생각하였다. …자살, 그것은 해결책이 아니지만 아마도 삶보다는 더 나은 길인 듯하다. …나는 나를 아는 모든 사람이, 특별히 제니퍼를 포함하여 내가 그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나는 그들을 너무나 사랑하여 그 사랑이 나의 이성을 압도해 버렸다.”

토드는 열여섯 살이고, 학교에서 상위권 학생이었으며, 봉사하는 병원에서도 책임감 있는 일꾼이었다. 그날 아침 이 열여섯 살 소년은 장미 한 송이와 그의 여자 친구를 위해 쓴 시 한 편과 함께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는 결코 자살하겠다고 한 적도 없었고, 심한 우울증도 없었다. 친구들과 어울리면서도 그는 술이나 마약을 하지 않았다. 자살의 전형적인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셜리는 다른 많은 사람과 상담을 해 왔지만, 정작 자기 아들과는 상담할 기회가 없었다.

남편은 토드를 급히 응급실로 데려갔다. 의료진은 위를 세척하고 혈관 주사를 놓았다. 신속한 조치 덕분에 토드는 또 다른 삶의 기회를 얻었다. 얼마 후에 그는 어머니와 조용히 이야기하게 되었다. 흐느낌 속에 말이 북받쳐 나왔다. “엄마, 엄마의 마음을 아프게 하려고 한 것은 아니에요. 제니퍼에게 상처 주려고 그랬던 것도 아니고요! 왜 그녀가 나를 사랑할 수 없나요? 그녀에게 떠나지 말라고 애원했는데….”

“애야, 울어라. 그냥 맘껏 울어.”라고 엄마가 말하였다.

“엄마, 누군가에게 떠나지 말라고 무릎 꿇고 애원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도 그들이 돌아서서 떠나 버린 적이요?”

“아니, 아들아, 난 없단다.”

토드가 조용히 속삭였다. “하나님은 애원하셨어요. 우리 중 누군가가 그분에게서 떠나갈 때마다.”

주님, 잠깐이라도 제가 주님에게서 멀어질 때 주님이 느끼시는 아픈 고통을 깨닫게 됩니다. 더 큰 아픔은 죄와 죄인이 우주에서 근절되는 그날에 오리라는 사실을 압니다. 주님은 제가 필요할 때마다 언제나 계셨습니다. 그날에는 제가 주님 원하시는 곳에 있기를 원합니다.

율법주의적 종교는 사람을 하나님과 조화되게 하지 못한다. 바리새인의 까다롭고 완고한 정통, 즉 회개와 온유와 사랑의 결핍은 죄인들을 넘어지게 하는 장애물에 불과했다. 그들은 맛을 잃은 소금과 같았다. 그들의 감화는 이 세상을 부패에서 방지하는 아무런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유일한 참 믿음은 심령을 정결케 하는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갈라디아서 5장 6절)이다. 그것은 품성을 변화시키는 누룩과 같은 것이다(보훈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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