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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6일 월요일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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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6:9)

 

주님의 기도는 초기 교회로부터 모든 교리의 총집합이자 모든 그리스도인 믿음의 요약으로 전해져 왔습니다. 주님께서 친히 가르치신 이 기도는 단순히 예배가 마칠 때나 사용하는 자명종 같은 게 아닙니다. 주기도문을 하나님과 사탄 사이의 대쟁투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때 놀라운 진리가 발견됩니다. ‘이름’, ‘나라’, ‘권세’, ‘영광등의 단어는 사탄과 하나님 사이의 대척점이 무엇인지 보여 줍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이름 대신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려고 했으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복하고 그분의 통치와 권위를 찬탈하려고 했습니다. 우리가 주님께서 가르치신 기도를 드릴 때에 모든 통치가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기도의 가치를 깨닫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주기도문은 기독교 신앙이 다른 종교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신앙임을 보여 줍니다. 자신의 신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종교는 기독교 외에는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때에 그분은 한없는 자비와 긍휼의 마음으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부모가 자녀를 향한 사랑과 맥락이 같습니다. 비록 지구가 타락했지만 여전히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의 특성을 알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모두가 가정을 통해 탄생했기 때문입니다. 가정에는 거래가 없습니다. 희생과 섬김이 그 특징입니다.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시면, 예수님은 우리의 맏형님 되시고( 1:6), 우리의 이웃들은 형제자매가 됩니다. 세상을 하나의 가족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우리가 매번 드리는 기도에서 강조되어야 합니다.

주의 기도는 결코 개인의 신앙 차원에서 사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사회적 차원의 가치가 들어 있습니다. 먼저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에서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며, 너의 하나님이며, 우리의 하나님임을 강조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6:11)라는 기도는 역시 내가 먹을 양식 차원을 넘어 공동체의 필요를 위해 드리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6:12)라는 기도는우리라는 공동체적 차원의 용서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결코 혼자 가는 곳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족 의식 속에서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니다.”라고 기도할 때 사탄의 장악력은 무력화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