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12일 수요일


한국 미순 선교본부 봉헌예배


  “대저 여호와께서 시온을 건설하시고 그 영광 중에 나타나셨음이라”(시편 102:16).


  그날은 1913년 2월 1일이었고 추운 날씨였습니다. 하지만 매우 뜻 깊은 날이었기에 각 곳으로부터 신자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습니다. 바로 한국 미순 선교본부 신축 건물들에 대한 봉헌예배 안식일이었습니다. 이 안식일은 한국 선교사업을 위하여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선교본부가 서울로 이전하였으나 항구적인 소재지를 정하지 못하고 서대문 옆의 반송망 월암동에서 3년 정도 보내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청량리 근방에서 적합한 부지 약 1,500평을 찾아내어 1912년 7월 10일에 2,333원 3전을 주고 매입했습니다. 즉시 본부와 출판소, 예배당, 사택 등을 건축하는데 착수하여 공사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봉헌예배를 드리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때 그 역사적인 자리에 지금도 한국연합회와 시조사, 회기동교회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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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예배당은 본부 건물 2층에 있었고 200명은 족히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봉헌예배 설교에서 샐리스버리(H.R.Salisbury) 교수는 ‘우리가 벽돌로 지은 이 건물을 하나님께 드리고 있으나 하나님께서 실제 계시는 곳은 우리의 마음이니 우리의 삶도 하나님께 드리자’라고 기별할 때에 온 회중은 실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시인이 “여호와께서 시온을 건설하시고 그 영광 중에 나타나셨음이라”라고 고백한 것처럼, 참석자 모두 ‘새로운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의 임재를 느끼며 ‘새로운 심령’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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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떡전거리>

  그 지역은 떡집이 많이 있어 떡전거리로 불렸으나 연산군 모친의 묘인 회릉이 있어 회릉골로도 불렸습니다. 그 후에 연산군이 폐위되자 동리 이름이 회묘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행정 구역이 다시 개편될 때에 관보에 이 지역을 회묘리(回墓里)라고 기재한다는 것이 잘못 표기하여 회기리(回基里)라고 했는데 오늘날까지 바뀐 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 교회가 이곳을 찾아와 본부를 세운 곳이어서 동리 이름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돌아오신 곳이라는 의미를 따라 바뀌게 된 것이라며, 하나님의 섭리일 것이라고 하는 특별한 이야기도 지금까지 전래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선교본부가 비로소 굳건한 터전을 마련한 가운데 전국 사방 각지를 향하여 보다 안정적이고 보다 짜임새 있게 각종 사업을 펼쳐나갈 수 있는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었던 것이었습니다.


  주님, 그 뜻과 그 사업을 온 마음과 온 정성을 다하여 잘 받들기 원합니다. 오늘도 우리를 이끌어 주소서.

Blessing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