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17일 월요일

 

행정구조 조정과 성장기 진입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 좇아가노라”(빌 3:13,14).

 

우리나라에서 1919년은 3․1 독립운동으로 크게 인식되어 있는 해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해는 한국 재림교회사에서도 매우 주목할 만한 해였습니다. 왜냐하면 한국 재림교회가 새로운 성장 국면으로 들어섰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세 분의 교회사가들이 공통적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오만규 교수는「재림교회사」의 부록 <한국 재림교회사>에서 1919년부터 1941년까지를 ‘성장기’로 구분하고 있으며, 김재신 목사 역시「한국 기독교 문화의 일연구」에서 이 기간을 ‘발전기’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이영린 목사는 위의 두 분에 앞서서「한국 재림교회사연구」에서 이 기간을 둘로 나누어 1919년부터 1930년까지는 ‘확장기’로, 1930년부터 1941년까지는 ‘성숙기’로 세분하고 있으나 크게 같은 입장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세 역사가들이 1919년을 성장기의 기점으로 삼은 까닭이 있었습니다.


1919년 3월 2일부터 두 주일 동안 중국 상해의 아세아지회 본부에서 열린 평의원회가 세 가지 매우 중요한 결의를 했습니다. 한 가지는 선일만합회(鮮日滿合會) 내의 각 대회를 합회로 분리 격상시키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다른 한 가지는 지회 내의 본방인 교역자들의 대우와 관련하여 그 해의 4월 1일부터 15년을 근속한 경우에 부양료를 받도록 한 것이었습니다. 또 다른 한 가지는 아세아지회라는 명칭을 원동지회라고 개칭한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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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아지회 총회에 참석한 대표자들 상해 <1915>



따라서 우리나라에서도 그 해 5월 9-17일까지 순안에서 조선합회 총회를 개최하고 조선합회 산하에 다음과 같이 한 대회와 두 미순을 두기로 결의하였습니다. 서선대회-서선지방, 중선미순-중선과 동북지방, 남선미순-남선지방. 또한 다음과 같이 각 책임자를 선출하였다. 조선합회장-전시열, 서선대회장-노설, 중선미순장-전시열, 남선미순장-오벽. 1919년 6월호 교회지남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조선합회 회칙>과 <조선합회 제1회 총회 보고>를 7쪽에 걸쳐 자세하게 게재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구조조정은 선교사업을 지역별로 더욱 가속화시키려는 의지의 발현이고, 또한 우리나라의 교세가 그만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인정이기도 했습니다. 재림교회사에서 어느 지역에서든지 구조조정은 놀랍게도 지속적으로 단행되어 왔는데 그때마다 ‘선교사업의 효율적인 전개’가 “푯대” 역할을 했습니다.


 주님, 보다 효율적인 선교에 거듭 초점을 맞추어 구조를 조정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 지혜를 우리도 따르게 하소서.

Blessing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