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헬라 말을 아느냐? 

2009년 6월 24일 수요일 - '그 좋던 옛날'의 교육

 


네가 헬라 말을 아느냐?  행 21:37

이 본문은 아침 예배를 위해 별로 좋은 것 같지 않다. 그러나 이 구절은 하나의 중요한 문제를 제기한다.
그 좋던 왕년의 교육은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당시의 사회 풍조는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배우고 그 언어로 된 고전 문학을 배운 사람이 아니면 아무도 유식한 사람으로 간주될 수 없었다.
그런 교육은 먹고 살기 위해 노동을 해야 하는 대중에게는 무의미한 것이었다. 그러나 교육 현장에서는 그런 것을 따지지 않았고, 심지어 초등 학교와 중등 학교 과정의 구분 같은 것도 없었다. 암담한 실상을 그대로 말하자면 소위 정식 학교 교육이란 대중과는 거리가 멀어, 돈 있고 배경이 좋아 일하지 않아도 먹고 살 길이 있는 계층에게만 기회가 열려 있었다.
의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 좋던 옛날의 교육은 형편이 없었다. 2천 년 이상 서방 세계의 교육은 고대 언어를 중심으로 한 낱말, 사상, 그리고 전통적인 명작 학습에 매달려 있었다. 이런 전통의 품위와 역사의 영향이 너무도 컸기 때문에 교육자들은 다른 대안을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개혁은 일어났고, 그 절정은 바로 재림 신앙이 태동하던 19세기에 찾아왔다.
1830년대에 교육 혁명의 선두에는 호레이스 만(Horace Mann) 같은 인물이 있었다. 그는 양질의 공립 초등 과정으로 모든 어린이에게 혜택을 주기 위한 투쟁의 선봉에 섰다. 그와 그의 친구들은 교육의 일반화와 실용성, 그리고 건강을 강조하였다. 그들은 아무리 아이들의 두뇌를 교육해도 몸이 병들면 별로 소용이 없음을 알고 있었다.
고등 교육 전선에서는 오벌린 대학(Oberlin College)이 선두였다. 이 대학은 1830년에 라틴어와 희랍어 고전을 교과 과정에서 배제하고 성서적 세계관에 중점을 두는 동시에 노작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학생들이 책에서 배우는 것 외에 유용한 기술을 습득하도록 함으로써 지육(智育)과 체육(體育) 간의 균형을 도모하였다.
“이 대학의 학제는 ‘몸과 마음과 지성’을 위한 것으로 그 목적이 최선의 전인 교육에 있다.”라고 오벌린 대학의 취지문은 밝힌다.
재림교회의 교육 이념은 진공 상태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오늘도 우리는 성서적인 세계관에 입각하여 우리의 전통과 관습을 평가해가며, 보다 큰 문화적 테두리 안에서 배울 수 있다.

 

씨에는 생명이 있고 땅에는 능력이 있다. 그러나 무한하신 능력이 밤낮으로 역사하지 아니하면 씨는 아무런 수확도 내지 못한다. 바싹 마른 밭에 수분을 주기 위하여 비가 내려야 하고, 태양이 온기를 보내 주어야 하고, 땅에 묻힌 씨에는 전기가 전달되어야 한다. 창조주께서 넣어 주신 생명은 오직 창조주만이 불러낼 수 있다. 모든 씨가 싹이 트고 모든 식물이 자라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이다(COL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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