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말 3:10

2009년 5월 26일 화요일 - 더 좋은 방법은 십일조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말 3:10

흥미롭게도 ‘조직적 자선’을 논의하던 초기에는 말라기 3장 8-10절을 이용하지도, 혹 <리뷰> 지에 글을 쓰는 사람들이 신실한 헌금에 따르는 축복을 강조하지도 않았다. 그들이 강조한 것은 ‘조직적 자선’은 편리하며, 본질적으로 희생이 따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사실, 그것은 너무도 편리하며 너무도 희생이 따르지 않는 제도였기 때문에 그것으로는 성장하는 교회의 필요를 충당할 길이 없었다.
안식일 준수자들이 성경의 십일금 제도를 받아들인 것은 점진적으로 일어난 변화였다. 일부 사람들은 분명히 1859년에 그것을 생각하였지만, 제임스 화잇은 재림신도들의 ‘조직적 자선’ 제도가 이스라엘 백성의 십일금 제도보다 우월한 것으로 확신하였다.
그러나 1876년 2월 더들리 M. 캔라이트(Dudley Canright)가 말라기 3장 8절-11절을 강조하는 일련의 기사를 <리뷰> 지에 발표하자 변화가 일기 시작하였다. 목사들을 부양하기 위한 성서적 계획으로 십일금 제도를 제시한 그는 “하나님은 당신 백성의 수입의 십일조, 즉 열의 하나를 당신을 섬겨 일하는 종들을 부양하기 위해 요구하신다.”고 열정적으로 역설하였다. “주께서는 우리에게 열의 하나를 내라고 하지 않으시고, 열의 하나는 당신의 것이라 말씀하신다.” 십일금은 이미 하나님의 것이므로 신자들이 하는 일은 단순히 그것을 주님께 돌려 드리는 일이다. 그는 또 이렇게 기록하였다. “나는 심히 만족한다. 하나님의 특별한 축복이 신속하고도 후하게 [십일금을] 바치는 자들에게 내릴 것이기 때문이다.”
조직적 자선은 실패하였으나, 십일금 제도는 개인적인 축복을 넘어 교회를 받드는 일에 성공을 거두게 된다. 1876년 대총회 회기 중 캔라이트는 발표하기를, 만일 모든 교인이 성실히 십일금을 바친다면 대총회는 매년 4만 달러 대신 15만 달러의 재원을 확보하게 될 것이라고 추정하였다.
캔라이트는 이어서 대총회가 십일금 제도를 승인해 줄 것을 촉구한 결과 1876년 10월에 통과되었다. 그 날 이후 성서적 십일조는 점차 재림교회의 목사 부양 방법으로 확고해졌다. 그리고 물론 그때쯤 해서는 교회가 말라기 3장이 말하는 “창고”로서 자금의 출납을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는 조직을 구비하고 있었다.

 

아버지, 이 교회의 재정 문제까지 지도해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성서적 십일금과 헌금 제도를 성실히 따를 때 부어주시는 주님의 축복에 대해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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