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1. 28 (금)

2008년 11월 28일 금요일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계 20:11, 12).

이 장면은 표면적으로 매우 무서운 장면이다. 이 땅에 사는 모든 이들 곧, 큰 자나 작은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모두가 재판을 받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아무 비밀도 없이 어느 날 모든 것이 드러날 것이다. 이 일은 의로운 자들에게는 매우 고무적인 이야기이다.

지금 여기서 ‘어카운터빌리티’에 관하여 말하려고 한다. 이 말은 남들의 도움을 받아 자기 자신을 지킨다는 것과 관련이 있다. 결코 문제를 혼자서만 당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누군가가 그대에게 용기를 주고 바른길을 가도록 도와주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은 이런 목적을 위하여 항상 곁에 계신다. 그러나 많은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돌보신다는 것만으로는 동기 유발이 충분히 되지 않는다. 그들은 돌보아 줄 진짜 사람을 필요로 한다.

그렇게 돌보아 주는 것에는 여러 형태가 있을 수 있다. 그중 하나는 ‘무명의 알코올 중독자’ 모임과 같은 함께 고통을 나누는 모임이다. 그것은 모두가 진실만을 말하며 모두가 서로의 말을 그대로 믿어 주는 것을 요구한다. 이런 그룹에서 놀라운 일들이 일어난다. 잘못과 어려움을 공개적으로 나눌 때, 전에는 대면하고 싶지 않던 문제들을 다룰 수 있는 힘을 얻는다. 모임에서 사람들에게 자기 사정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 것은 자기의 천성적 게으름이나 부도덕한 행동을 제어하게 한다. 결과적으로 ‘어카운터빌리티’는 올바른 삶을 살게 하는 큰 동기 유발이다.

감히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그대에게 혹 콧대 센 친구가 있는가? 그대가 믿을 수 있고, 그대를 사랑하고 깊이 아껴 주는 사람이 있는가? 그대가 아픔을 당하는 것을 전혀 원치 않는 사람이 있는가? 그런 친구에게 그대 생애에서 고치고 싶은 것들을 나누라. 그대는 그에게 온전히 솔직하고, 또 그도 그대에게 솔직히 말해 줄 것을 기대한다고 말하라.

이렇게 하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그런데 그렇게 안 하고는 살 수가 없다. 나에게는 아내 말고도 3명의 가까운 친구들이 있다(백인 한 명, 흑인 한 명, 히스패닉 한 명).

이 세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것을 안다. 그들의 사랑을 믿고, 나는 그들이 내게서 어떤 부정적인 것 혹은 잘못을 보거든 당장 이야기할 수 있는 권리를 주었다. 우리는 식사를 하거나 오랫동안 산책을 할 때 맘속에 묵은 찌꺼기들을 서로 나눈다.

성경은 친구의 통책보다(잠 27:6) 더 귀중한 것이 없음을 제시해 준다. 그리고 사랑으로 진실을 말해 주는 친구보다 더 진실한 친구는 없다.

주님, 저의 모든 일에 책임을 맡아 주시기를 원합니다. 저의 친구들을 사용하시어 제 생애가 주님의 목적에 맞게 하십시오.

죄를 이루는 것은 큰 불순종의 행위가 아니고 지극히 작은 것에서 하나님이 나타낸 뜻과 충돌을 빚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사람이 아직 죄와 교통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마음은 섬기는 바에 따라 나누어진다. 거기에는 사실상 하나님을 부인하는 일 곧 하늘 정부의 율법을 반역하는 일이 있다(보훈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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