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예수라 하라

2009년 10월 19일 월요일 - 미네아폴리스 회상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1:21


1888
년 대총회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역사의 큰 전환점 가운데 하나다. 당시 이루어진 성과를 조금도 의심할 수 없다. 당시 대총회의 결과로 교회는 다시 성경을 교리와 신앙 생활의 유일한 중심으로 받아들였으며, 예수님을 드높이고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은혜가 재림 신학의 핵심으로 자리잡았고, 율법은 은혜의 복음 안에서 제자리를 찾았으며, 성도들은 삼위일체와 그리스도의 온전한 신성 및 인격을 갖춘 성령 등의 주제에 관해 다시 연구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결과는, 재림신도들이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핵심 성경 구절인 요한계시록 14 12절에 나타난 셋째 천사의 기별을 더 완전히 이해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재림신도들은 이 구절을 붙잡고 주님의 재림을 인내로써 기다리며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지켰다. 성도들은 이 구절이 재림(14-20) 전에 하나님이 세상에 보내는 마지막 기별로써 예수 믿음이 그 복음의 핵심이라고 믿었다.


다시 말해, 1888년의 기별을 통해 재림성도들은 자신들이 받은 기별을 전혀 새롭게 해석한 것이다. 반가운 일이었다.


하지만 마귀는 우리로 하여금 그 복음을 잊거나 무시하도록 늘 애쓴다. 그래서 1890년대와 그 이후에도 성도들 중에는 복음보다 율법을 강조하는 무리가 있었으며, 존즈와 왜고너의 기별을 낡은 율법주의와 인간적 완전주의로 들어가는 새로운 문으로 만들었다. 존즈와 왜고너는 이것들을 막기 위해 세움을 입었는데도 말이다.


미네아폴리스 경험은 우리에게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우쳐준다. 첫째는 인간이 사악하다는 사실이고, 둘째는 하나님의 은혜는 무한하다는 사실이다. 미네아폴리스 집회 당시 교회의 역사를 되돌아 보면 존 뉴튼이 지은 다음과 같은 찬미가 가사가 머리에 떠오른다. “놀라운 은혜! 나 같이 비천한 자를 구원하였으나 얼마나 아름다운가!”(한국 찬미가 88)


놀라운 은혜는 비할 데가 없는 은혜다. 이 두 단어는 1888년 사건의 기별과 의미를 압축하여 표현해 준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나누어주시기 위하여 항상 아버지께로부터 받으셨다. 그는 말씀하시기를 “너희의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요 14:24),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마 20:28) 함이라고 하셨다. 그가 사시고, 생각하시고, 기도하신 것은 자신을 위함이 아니요 남을 위함이었다. 그는 매일 아침 여러 시간 동안 아버지와 교통하심으로 하늘의 빛을 사람에게 나누어 줄 준비를 하셨다(COL 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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