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박한 기별

1월 16일 금요일 - 긴박한 기별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너라 한대. 마 22:9

밀러주의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라고 세상에 경고해야 할 긴박성을 느꼈다. 그들이 사용했던 한 가지 방법은 1800년 이래 감리교인들과 또 다른 신자들이 영적 집회로 사용했던 야영회였다. 밀러주의의 첫 야영회는 1842년 보스톤의 연합 모임에서 발의되었다. 그 시점에서 1843년은 위험스럽게도 가까웠고, 대부분의 세상은 경고를 받지 못하였다.

L. C. 콜린즈(Collins)는 다음의 글에서 많은 사람들의 믿음을 나타냈다. “나는 1843년에 있을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다. 나는 영광 외에, 그 이상은 아무 계산도 하지 않는다. 잠자는 처녀들을 깨우고 영혼을 구원할 시간이 매우 짧기 때문에, 우리는 일해야 한다. 밤낮으로 일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급하게 몰아치신다. 마지막 초청을 하라고. 우리는 진지하게 일하며, 그들을 강권하여 하나님의 집이 가득 차도록 해야 한다. 이스라엘의 강한 자들이 돕기 위해 몰려들고 있다. 밤중 소리는 울려 퍼져야 한다. 모든 골짜기와 모든 언덕 위와 평원에서 울려 퍼져야 한다. 무서운 떨림이 시온의 죄인들을 사로잡아야 한다. 자비의 문이 영원토록 그들 앞에서 닫히기 전에 위기가 와야 한다. 그들은 지금이 아니면 결코 기회가 없다는 것을 느껴야만 한다.” 1842년 중반에 밀러주의자들은 긴박감과 책임감을 무겁게 느꼈다.

콜린즈가 편지를 쓴 다음날, 조셉 베이츠(Joseph Bates)를 선봉으로 기념비적 보스톤 연합 모임이 있었다. 그 모임에서 야영회를 열기로 결의하였을 뿐만 아니라, 야영회를 주관하는 위원회를 위촉하였다. 그 모임의 “주요 목표는 죄인들을 일깨우고 밤중 소리를 전함으로 기독교인들을 정화시키는” 것이었다. 어떤 밀러주의자들은 그런 모임을 갖는 시도가 주제 넘는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결국 야영회는 큰 행사였다. 어떤 이들은 비아냥거렸다. “한 줌밖에 안 되는 재림교인들이 야영회를 개최한다고!” 집에서 모이는 것도 힘들 텐데.” 그러나 겉보기와 상관 없이 “해보자”는 것이 그들의 주요 화두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에 보상하셨다. 조사이어 리치(Josiah Litch)는 첫 두 재림 야영회에서 5, 6백 명이 하나님께 돌아온 것으로 추산하였다. 여기에 교훈이 있다. 겉모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이 중요하다. 그리고 지금도 하나님은 믿음으로 내딛고 “해보자”는 사람들을 축복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백합화의 꽃잎 위에 그대를 위한 기별을 불신과 이기심과 해로운 근심을 버릴 때만 읽을 수 있는 말로 기록하신다. 아버지의 마음에 흘러넘치는 사랑이 아니라면, 어떻게 그분께서 생애의 여정을 밝고 즐겁게 해 주는 노래하는 새들과 피어나는 꽃들을 주시겠는가? 생존에 필요한 것만 생각하면 꽃들과 새들이 없어도 되지만, 하나님께서는 단지 생존에 필요한 것만 공급하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않으셨다. 그분께서는 그대를 향한 당신의 애틋한 마음을 알려 주시기 위해 땅과 공중과 하늘을 아름다운 것으로 채우셨다. 모든 피조물의 아름다움은 그분의 영광의 빛을 반사하는 것일 뿐이다(보훈,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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