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츠가 안식일 기별을 전하다(4)

2009년 3월 9일 월요일 - 베이츠가 안식일 기별을 전하다(4)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행 18:9

우리가 살펴본 바와 같이, 베이츠는 안식일 진리를 전하는 데에는 전혀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의 아내를 개심시키지 못한 점은 두드러진 실패 중 하나였다. 비록 그가 안식일 주제에 관해 수 많은 책을 저술하고 아내를 늘 설득하였으나, 그의 아내도 그에 못지 않게 고집이 세었던 것 같다. 그 결과 “베이츠는 홀로 거룩한 안식일을 지켰다.”
페어헤이븐에서 “베이츠 선장은 일요일에 아내를 마차에 태워 교회로 데려가 주곤 하였지만, 정작 그 자신은 교황의 안식일에 예배하러 들어가지 않고, 예배가 끝나면 다시 아내를 태우러 왔다.” 그러나 프루던스 베이츠도 1850년에 제칠일을 안식일로 받아들였다. 베이츠의 기도와 모범 그리고 지극한 인내심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우리들의 친구들과 가족들이 그러하듯 베이츠의 아내도 안 듣고 있었던 것처럼 보였으나, 사실은 듣고 있었던 것이다.
베이츠에게 더 좋은 소식은 제임스 화잇과 엘렌 화잇이 1846년 11월경에 제칠일 안식일 진리를 받아들였다는 사실이다. 제임스는 베이츠가 저술한 <영원한 표인 제칠일 안식일>을 “읽고 안식일 진리를 확실히 깨달았으며, 그 진리를 가르치기 시작하였다.”고 후에 보고하였다. 제임스가 안식일 진리를 받아들임으로써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의 기초가 놓였다. 그 이후로 베이츠와 화잇은 함께 협력하기 시작하였다.
드디어 일들이 진척되기 시작하였다. 1846년 12월 베이츠가 전하는 제칠일 안식일 기별은 뉴욕 주 서부에 당도하였다. 그 해 말, 베이츠와 제임스는 뉴욕 주 포트 깁슨에 자리잡은 에드슨의 집에서, 하늘 성소 이론을 전개하였던 하이럼 에드슨과 O. R. L. 크로지어 및 F. B. 한 등과 만나고 싶어하였다. 그러나 제임스는 사정상 동부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었다.
토론의 주제 중 한 가지는 제칠일 안식일이었는데, 에드슨은 몇 달 동안 이 문제에 대하여 호의적으로 검토해 보았으나 분명한 확신은 없었다. 그러나 베이츠가 발표하는 중 에드슨은 “자리에 그냥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발표가 끝나자, “에드슨은 자리에서 일어나 ‘베이츠 형제여, 그것이 바로 빛이요 진리입니다. 제칠일이 안식일이며, 형제와 같이 나도 안식일을 지겠습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래서 1846년 말 재림과 안식일 및 하늘 성소 등 세 가지 교리에 관하여 같은 생각을 가진 성도들이 생겨난 것이다. 드디어 제칠일안식일재림교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우리가 볼 때에, 하나님께서는 천천히 이끄실 수도 있으나, 그분은 확실히 이끄신다.

주님이여, 주님의 지도에 참을성 있게 다라가도록 도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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