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렬한 찰스 피치

1월 17일  안식일 - 열렬한 찰스 피치

 
주의 집을 향한 열성이 나를 삼켰나이다. 시 69:9

1838년 밀러의 출판된 재림 강의록 한 권이 장로교 목사이자 노예 폐지 운동 지도자 중 한 사람인 찰즈 피치(Charles Fitch)의 손에 들어왔다.

3월 5일, 그는 밀러에게 편지하였다. “나는 그 책을 주의 깊이 연구하였습니다. 성경을 제외하고 그렇게 깊은 관심을 끌었던 것은 없었습니다. 나는 그 책을 성경과 역사와 비교하였습니다. 당신의 견해는 의심할 나위 없이 정확합니다.” 열성과 진실함에 걸맞게 피치는 한 번 읽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그의 “마음이 그 주제에 크게 압도당하여,” 얼마 되지 않아 그는 밀러의 책을 여섯 번이나 읽었다. 밀러의 기별에 자극을 받아, 피치는 즉시로 그가 새로 발견한 믿음에 관하여 “보스톤 사람들에게 글을 쓰고 설교하였다.”

3월 4일, 처음으로 밀러의 관점에 관한 두 차례의 설교를 한 다음날, 그는 기쁨에 넘쳐서, 자신이 “성루 위의 파수꾼”이 되어, “나팔 소리를 분명히 내기” 원한다고 윌리엄에게 편지를 썼다. 그 임무를 성실히 이행하는 주요 단계로 피치는 다음날인 3월 6일 보스톤의 목사 모임에서 재림 교리에 관한 글을 읽을 계획이라는 사실을 밀러에게 알렸다.

그러나 가끔 열성이 지식과 지혜보다 앞선다. 1838년 3월 6일, 찰즈 피치의 경우에 이런 일이 생긴 것이다. 그 교리를 살펴볼 시간도 없었던 그 열성적인 설교자는 그가 받은 반응 때문에 수그러들고 큰 충격을 입었다. 그의 목회 동료들에게 그 교리는 “헛소리”였다. 피치는 이렇게 회상하였다. “그 주제에 관하여 사람들이 많이 웃었고, 내가 바보로 취급되고 있다는 느낌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그 후 그는 재림이 가까움에 대한 설교를 포기하였다. 후일 그는 “인간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덫에 걸리게 하였다.”고 회고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 가지 않았다.

1841년 그 주제에 관하여 성경을 다시 읽었다. 그리고 피치는 이 운동의 가장 특출한 옹호자 중 한 사람이 되었다. 그는 밀러주의의 지도적 설교자 중 1844년의 실망을 통과하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 될 것이었다. 춥고 바람이 심하게 불던 9월 어느 날, 뉴욕 주 버팔로의 얼음장 같은 이리 호수에서 일단의 신자들에게 침례를 베풀었다. 젖은 옷을 입고 거처로 가는 중 두 차례나 다시 몇 사람들에게 침례를 더 주었다. 장시간의 추위로 병에 걸린 피치는 10월 14일 생을 마감하였다. 죽음이 다가왔지만, 39세의 신자의 열성은 줄어들지 않았다. 그는 “잠시 잠을 자다가 부활의 아침에 일어날 것”을 알았다.

하나님의 법은 사랑의 법이다. 그분께서는 그대가 이 세상에 있게 된 것은 단지 자신을 위해서만 탐구하고, 땅을 파고 집을 짓고, 수고하고 길쌈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꽃처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밝고 즐겁고 아름다운 삶을 삶으로써, 사랑의 봉사를 통해 다른 사람들의 생애를 즐겁게 해 주기 위한 목적도 있음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 그대를 아름다움으로 두르셨다(보훈,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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