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4일 화요일 

"땅 끝" 선교


“주께서 이같이 우리를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을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행 13:47).


초창기 역사에서 또 하나의 주목할 만한 것은 선교사들의 내한입니다. 1905년 11월에 스미스(W.R.Smith) 목사 내외가 선교사로 우리나라에 왔습니다. 그 후 1907년 1월에는 샤펜버그(M.Schaffenberg, 사엄태) 양이 왔으며, 이어 1908년에는 러셀(R.Russel, 노설) 의사 부부와 스캇(H.M.Scott) 양, 버터필드(C.L.Butterfield, 전시열) 목사 가족이 왔습니다. 이들 은 우리나라에서 '사중 사업' 즉 선교, 의료, 교육, 출판사업을 조직적으로 펼치도록 대총회로부터 보냄 받은 선교사들이었습니다.


이처럼 선교사들이 대거 올 수 있었던 것은 대총회의 선교 전략으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의 대총회는 ‘선교’에 대한 강한 비전을 가지고 조직 재편과 본부 이전을 과감히 추진했습니다. 더 나아가 세계선교에 대한 막중한 사명을 인식하면서 할 수 있는 대로 평신도들에게 북미지역의 선교를 맡기고 십일조 지원을 받는 목회자들을 해외지역에 투입했습니다. 이러한 선교정책에 힘입어 우리 재림교회는 가히 폭발적인 부흥을 이루면서 세계적인 교회로 설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 시기에 우리나라 선교가 시작되었으므로 대총회의 적극적인 지원과 함께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사업을 전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초기 선교사들 중에서 샤펜버그는 23세에 불과한 처녀였습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은 특별한 일화를 남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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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그녀는 전도 방문을 다니다가 늦게 귀가하여 잠이 들었는데, 강 저편에서 흰옷 입은 사람들이 건너오라고 손짓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이튿날 그녀는 대총회로부터 한국에 선교사로 갈 것을 요청하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한국에 대하여 처음 듣는지라 도서관에 가서 백과사전을 펴서 봤습니다. 한국에 대한 내용을 찬찬히 읽다가 거기에 실린 사진 속에 그녀가 꿈에 본 것과 똑같이 흰옷 입은 사람들이 있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이로 인해 그녀는 하나님께서 대총회를 통하여 부르시는 것을 깨닫고는 비록 처녀였으나 기꺼이 순종하기로 하고 우리나라에 온 것이었습니다.


역사는 '죽은' 과거가 아니라 '산' 과거이어야 가치가 있습니다. 그 뜻과 정신이 지금도 살아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초기 선교사들의 내한과 배경은 재림교회의 존재 이유가 선교인 것을 거듭 일깨워줍니다. "땅 끝" 선교(행 1:8; 13:47)는 하나님의 명령인 것입니다.


주님! 이 아침에 우리가 땅 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이 되어야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Blessing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