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5일 수요일


교육이 곧 선교이다

 

“네 모든 자녀는 여호와의 교훈을 받을 것이니 네 자녀는 크게 평강할 것이며”(사 54:13). 

선돌교회는 1904년 9월에 우리나라에서 첫 번째로 조직된 재림교회였습니다. 이 교회는 그 해 겨울부터 소학교 운영도 시작했습니다. 어린이 수는 기껏 10여명이고, 교실이라야 온돌방 한 칸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교사도 1명뿐이었는데, 그나마 한약상을 하면서 가르쳐야 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매우 빈약한 것이기는 하지만, 초창기 교회 지도자나 성도들은 신앙교육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마 5:13,14)는 말씀에 기초하여 교명을 광염(光鹽)학교라 정하고 교육사업에 착수한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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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5년 광염서당 설립>
                                           
 
                           
이어, 중골교회를 비롯하여 여러 교회에서 소학교를 운영했습니다. 1909년 말에는 12개 소학교와 18명의 교사, 179명의 학생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두 가지 열정이 합해진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 민족의 교육에 대한 열정이고, 둘째는 재림 성도의 신앙교육에 대한 열정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서북지역 사람들의 개화에 대한 열정도 필시 더해졌을 것입니다.

이와 더불어 재림교회의 고유한 교육철학에 기초한 첫 번째 교육기관인 의명학교가 순안에 세워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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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여름에 스미스 목사는 선교본부를 진남포에서 순안으로 옮겼습니다. 이때에 하나님의 영께서는 그에게 사역자 양성에 대한 꿈을 갖게 하셨습니다. 교육이 곧 선교였습니다. 그래서 교육기관 설립에 대하여 교회 지도자들과 의논했습
니다. 모두 대찬성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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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 R. Smith, 스미스 목사, 1905. 11. 17>

                                                         
뜻을 모으자 길도 열렸습니다. 스미스 목사는 순안교회의 신자이며 지역 유지인 김두형의 협력을 받아 평안남도 관찰사에게 학교 설립 계획을 밝히고 석박산 기슭에 약 5만 5천 평의 부지를 무상으로 기증 받았습니다. 또한 자신의 부모, 형제, 친척들에게 호소하여 건축자금을 모금하고, 또 대총회에서도 200원을 지원 받아 총 693원으로 한식 와가(瓦家) 7간을 지었습니다.


이리하여 1907년 9월 12일에 보통과(4년)와 고등과(3년)를 교육할 수 있는 학교 인가를 받아 학생 11명을 모집하고 그 해 12월 9일에 개교했습니다. 바로 이 학교가 우리나라에서 전인교육의 산실인 삼육 교육의 효시가 된 것입니다.


주님, 일찍부터 각급 학교들을 세워주셔서 우리의 자녀들이 신앙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하시고 선교 일꾼으로 양성되게 해 주셔서 진정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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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 순안학교 졸업반

Blessing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