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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일 월요일 - 아프리카를 향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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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고후 5:14~15)

 

기독교 역사를 빛내는 존재들이 있다. 아프리카의 오지를 찾아다니며 복음을 전한 용감한 선교사 데이비드 리빙스턴(1813~73)도 그런 인물이다. 1841, 케이프타운에 도착한 그는 곧현지인 일꾼들을 통해 복음을 전하고자 북쪽으로 향했다. 3년 뒤에는 사자에게 공격받아 다치기도 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1845 1 2, 리빙스턴은 로버트 모펏의 장녀 메리 모펏과 결혼했다. 메리 모펏은 1862년에 사망할 때까지 리빙스턴의 수많은 여정에 함께했다.” 그러나아프리카 사역에 몰두한 리빙스턴에게 아내와 딸은 우선순위에서 두 번째로 밀려났다.”


30년 넘게 아프리카에 애정을 쏟으며 봉사한 리빙스턴은 1873 5 1, 방웨울루 호수(오늘날의 잠비아) 남동쪽에서 말라리아와 이질로 숨을 거뒀다. 그를 충실히 따랐던 추마와 수시는 근처 나무 아래에 리빙스턴의 심장만 따로 묻었고 시신은 오늘날의 탄자니아에 있는 바가모요 지역을 거쳐 지금은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장됐다. 그러나 그의 심장은 그의 마음이 머물렀던 아프리카에 여전히 남아 있다.


리빙스턴은 선교지를 찾아 나서고 씨앗을 뿌리는 데 성공했지만 곧바로 개종과 회심을 이끌어 내지는 못했다. 그는 이렇게 선언했다. “우리의 활동과 열매는 차곡차곡 쌓인다. 우리는 언젠가 변화가 생기리라는 마음으로 일했다. 이후의 선교사들은 설교할 때마다 회심자를 열매로 거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개척자와 조력자이다.”


리빙스턴은 아프리카에서 봉사한 세월을 절대 후회하지 않았다. “내가 아프리카에 삶을 너무 많이 할애하고 희생했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결코 갚을 수 없는 큰 빚을 진 하나님께 조금 돌려 드린 것을 두고희생이라 부를 수는 없다.”라고 그는 담대하게 진술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희생하셨다. 우리도 복음이 필요한 곳을 위해 희생을 감수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