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24일 월요일

 

「교회지남」과 「시조」 강제 폐간되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12).

 

흔히 1941-1945년을 수난기라고 일컫습니다. 이 기간 동안 우리 재림교회가 겪어야 했던 수난은 정말 극심한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일제가 재림교회를 제거할 대상으로 삼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강력한 재림신앙을 지니고 있어서 저들에게 항상 눈에 가시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럴지라도 선교사들 때문에 외교 관계상 우리 재림교회를 함부로 대하지는 못했는데, 선교사들이 다 떠나자 일제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에 대하여 폭압의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교회 기관지인「교회지남」을 강제로 폐간시켰습니다. 그리하여 불가불 1941년 4월호까지 간행하고 중단해야 했습니다.「교회지남」을「교회지침」으로 바꾸어 속간하려 시도했으나 8월호와 12월호만 발행하고 더 이상 펴낼 수 없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김재신 목사가「교회지남 해제」라는 기사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1945년 8․15 해방이 될 때까지 교회의 등불이 꺼지고 지남침의 바늘이 뽑힌 채, 교회의 통신이 두절되고 혈맥이 끊긴 상태로 어두운 암흑기를 지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달이 3만부 이상 발행하고 있었으나「시조」역시 강제 폐간 처분을 당하여 제31권 4호, 통권 367호까지 내고 중단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제호를「건강생활」로 바꾸고 곧바로 재 간행에 들어갔습니다만 1944년 6월호(제34권 3호)를 끝으로 다시 폐간해야 했습니다.


k0061s.jpg
건강생활(1941. 6)


시조사가 간행한「세계의 고민」,「각 시대의 대쟁투」,「다니엘 연구」등의 서적들도 판매 중지 명령을 받았습니다. 이 가운데「세계의 고민」은 천황과 궁성의 사진을 게재한 것 때문에 아예 전량이 몰수되고 소각됐습니다. 이뿐 아니라 일제는 아시아의 맹주로 자처하며 말세니 예수 재림이니 하는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못하게 하고 재림이나 예수님을 왕으로 또는 대장으로 나타내는 찬미는 일절 부르지 못하게 했습니다.


더욱이 태평양 전쟁 이후에는 집집마다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신부(神符)를 모시게 하고 각 마을마다 신사(神社)를 세워 참배하게 했습니다. 이러한 강제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데 전심했던 재림성도들에게 고통스러운 것들이었으며 참으로 큰 “인내”가 필요했습니다.


주님, 고통의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때에 주님께서 우리와 더 가까이 함께 하시는 것을 기억하게 하소서.


Blessing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