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2009년 9월 21일 월요일 - 언약에 대하여(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새 언약을 세우리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31:31, 34


엘렌 화잇과 왜고너는 언약에 있어 본질적으로 일치하였다. 엘렌이 1880대 후반기에 기록한 두 언약에 대한 글이 이 주제에 관한 그들의 견해를 잘 요약한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옛 언약의 조건은 순종하여 살라는 것이었다. ‘새 언약더 좋은 약속’-죄의 용서와 마음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의 율법의 원칙들과 조화되게 하는 약속-위에 세워졌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새 언약을 세우리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31: 31, 34)


돌판에 새겨진 같은 율법이 성령에 의하여 마음판에 기록된다. 자신의 의로움을 세우려 하는 대신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의를 수락한다. 그의 보혈이 우리의 죄를 대속한다. 그의 순종이 우리를 위하여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성령에 의해 새롭게 된 마음이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된다.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하여 우리는 우리 마음에 기록된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며 살게 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영을 소유하고 그분이 사신 것처럼 살게 될 것이다.”(부조와 선지자, 372)


은혜의 언약이라는 개념은, 순종이 최고임을 강조하는 옛 언약을 고수하는 수많은 옛 노선 지지 재림교인들을 뿌리까지 흔들었다. 왜고너가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에 초점을 맞춤으로, 이미 우리가 본 대로, 왜고너와 존즈 그리고 엘렌 화잇이 그들의 신학 속에서 율법과 순종을 중요하게 취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수구파의 율법 중심적인 신학을 약화시켰다. 그들에게 순종은 구원하는 관계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예수와의 관계 속에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는 어느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가? 내 느낌으로는 너무나 많은 재림교인들이 그리스도와 또한 그분이 그들을 위하여 하신 일에 관심을 나타내기보다는 우선 자신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자신들의 행위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 같다.


오늘이 우리 남은 날 동안 하나님과 새로운 언약의 삶을 살도록 우리의 삶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최상의 날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말씀을 열심히 연구하고 자세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태만한 자는 결코 진리를 분명하고 명확하게 이해할 수 없다. 세속적 축복도 열심과 인내와 불굴의 노력이 없이는 얻을 수 없다. 사람이 자기 사업에 성공하려면 먼저 그 일을 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하고 다음에 그 결과를 바라보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영적 지식도 열렬한 노력이 없이는 기대할 수 없다. 진리의 보화를 찾고자 하는 자들은 마치 광부가 땅속에 감춰진 보화를 찾기 위하여 땅을 파는 것처럼 진리의 말씀을 파야 한다(COL 111).

친구나 가족, 직장동료에게 추천하고 싶으신 분은 이곳을 클릭해주십시오
webmaster@egw.org로 추천하실 분의 메일주소를 보내주세요.

.
영원한 복음을 홈페이지로 하기 원하시면 이곳을 클릭하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