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땅에서 오는 좋은 기별은

2009년 8월 8일 안식일 - 새로운 문제들(3)

 


먼 땅에서 오는 좋은 기별은 목마른 사람에게 냉수 같으니라 25:25


1886
년이 되니 임박한 재림교회의 신학적 대결 구도가 현저히 드러났다. 한편에는 대총회장 G. I. 버틀러와 대총회 서기 유라이어 스미스, 반대편에는 두 사람의 서부 출신 편집인들인 A. T. 존즈와 E. J. 왜고너가 있었다.


이 대결에서 유일한 여성 참가자는 양측과 함께 일하기 위해 중립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1887년 초순 엘렌 화잇은 젊은이들이 불공평한 대결에서 부당한 대접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가 반드시 들어야 할 무엇을 가르치고 있다는 결론을 내리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1887 4월 그녀는 존즈와 왜고너가 1888년 대총회 때 발표할 기회를 얻도록 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결국 존즈와 왜고너의 1888년 기별의 진정한 의미를 가장 명백히 설명한 사람은 엘렌 화잇이었다. 그녀의 주제는 요한 계시록 14 12절의 한 부분에 대한 재해석을 중심으로 한 것이었다. “성도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 여기 있도다.”


이것은 재림교회 역사에서 핵심적 본문이다. 이 말씀에는 재림 전에 세상에 주는 하나님의 마지막 기별이 들어 있으며, 14절부터 20절까지에는 그 때 일어날 일들이 묘사되어 있다.


흥미로운 것은 1888년의 문제로 맞서 투쟁하는 양편이 모두 요한 계시록 14 12절에 신경을 집중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은 각기 강조하는 부분이 달랐다. 수구파는하나님의 계명을 치켜들었고, 개혁자들은예수의 믿음에 역점을 두었다.” 그런데 미네아폴리스 대총회에서 요한 계시록 14 12절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흘러나왔다. 그 때문에 재림교회의 신학은 영원히 변할 것이었다.


엘렌 화잇은 존즈와 왜고너를 지지하였기 때문에 수난을 당하였다. 1888 12월 그녀는 그 해의 대총회를 회고하며내 증언은 무시되었다. 내 평생에내가 그 때만큼 푸대접 받은 일은 결코 없었다.”고 기록하였다(편지 7, 1888).


그 좋은 옛날에는 모든 일이 다 잘 돌아간 것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있으나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다. 선한 사람들이 서로 화를 내고는 용서받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한다.

 

그리스도와 함께 일하는 동역자로서 열매를 맺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나 먼저 땅에 떨어져 죽어야 한다. 생명이 세상의 필요를 상징하는 밭이랑에 던져져야 하고 자애(自愛)와 이기심이 죽어 없어져야 한다. 그러나 자아 희생의 법칙은 자아 보존(保存)의 법칙이다. 땅속에 묻힌 씨는 열매를 내고 그 열매는 또다시 땅에 심어진다. 그렇게 함으로 곡식이 불어나게 된다. 농부는 그 곡식을 땅에 던짐으로 그것을 보존한다. 이와 같이 인생에서도 죽는 것이 곧 사는 것이다. 보존될 생명은 하나님과 사람들을 위한 봉사에 아낌없이 바쳐진 생명이다(COL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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