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10일 월요일


1910년 - 대 전진의 해


“이 후에 주께서 달리 칠십 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동 각처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눅 10:1).

1909년 9월에 선교본부를 서북지방의 순안에서 중한지방의 서울로 옮겼습니다. 그 목적은 우리나라의 중심부에 자리를 잡고 전국 각 지역을 대상으로 선교전선을 구축하고「세 천사의 기별」을 보다 적극적으로 증거하는 데 있었습니다.

이 목적을 구체적으로 추진하기 위하여 1910년 2월에 서울 북부 반송방 월암동에 위치한 선교본부에서 한 달 동안 목회자 수양회를 개최했습니다. 이때에 수양회에 참석한 우리나라 사람은 모두 6명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미 서북지방 선교를 위하여 크게 활약하던 자들이었습니다. 날마다 오전에는 전도에 대하여 집중교육을 받고 오후에는 집집을 방문하며 사람들을 만나 성경을 가르치는 직접적인 선교활동을 했습니다. 매우 강도 높은 교육과 훈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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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회가 끝났을 때에 이 여섯 사람에게는 새로운 사역 임무가 주어졌습니다. 그들은 서북지방으로 다시 돌아가지 아니할 것이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선교사들과 함께 전국으로 흩어져 선교 기지를 세우고 교회를 개척하는 일을 해야 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수양회를 개최한 중요한 목적이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선교사와 둘씩 짝이 되어 각 지방으로 파송되었습니다.

이어 1910년 8월 5일부터 13일까지 서울에서 개최된 총회에서 대단히 중요한 결정이 이루어졌습니다. 바로 우리나라를 네 선교 지역으로 나누고 각 지역 책임자를 세운 것이었습니다. 함경북도, 함경남도, 강원도 - 스미스; 평안북도, 평안남도, 황해도 - 노설; 경기도, 충청북도, 충청남도 - 전시열; 전라북도, 전라남도, 경상북도, 경상남도 - 왕아시. 이때에 전시열은 한국 선교의 총 책임을 맡은 미순장으로 세워졌는데 한 선교지역의 책임도 겸직했습니다. 이러한 결정은 목회 수양회 후에 시작된 각 지역의 선교사업을 보다 구체적으로 확정하고 추인한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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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예수님의 제자들이 “성령”의 인도 아래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로 나아가야 했던 것처럼(행 1:8) 재림교회도 서북지방의 경계를 넘어서서 전국적인 선교 조직망을 갖추고 온 한국으로 나아간 것이었습니다. 한국 재림교회 초기 역사에서 1910년은 정말 대 전진의 해였습니다.

주님, 이제도 우리를 ‘각동 각처’로 보내십니다. 우리 모두 즐겨 나아가게 하시고 주님 오시는 길을 힘껏 예비하게 하소서.

Blessing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