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이 희망을 가리키다

1월 5일 월요일  절망이 희망을 가리키다

 

이들의 당하는 일이 일반인 줄을 내가 깨닫고 심중에 이르기를 우매자의 당한 것을 나도 당하리니 내가 어찌하여 지혜가 더하였고 이에 내가 심중에 이르기를 이것도 헛되도다. . .지혜자나 우매자나 영원토록 기억함을 얻지 못하나니 후일에는 다 잊어버린지 오랠 것임이라 오호라 지혜자의 죽음이 우매자의 죽음과 일반이로다. .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니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전 2:14-16, 3:19, 20.

영국과의 제2차 전쟁(18:12-14)에서 밀러가 대위로 복무한 것은 그의 삶의 전환점을 제공하였다. 이 전쟁 전에 이미 밀러는 이신론적 신조에 대한 의심을 품기 시작하였다. 이신론이 사후를 약속하였지만, 논리적으로 따져볼 때에 죽음 후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동시에 밀러는 자신의 죽음과 그 의미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1814년 10월 28일 그의 아내에게 죽은 전우에 관하여 편지를 썼다. "스펜서처럼 나도 곧 없어질 것이다. 매우 엄숙한 생각이 든다."

삶의 엄연한 현실이 밀러를 한때 그렇게 맹렬히 반대했던 믿음으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아직도 그에게는 한 가지 희망이 있었다. 만일 군대에서 참된 애국심을 찾게 된다면, 이신론을 믿은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말하였다. "군대에서의 2년은 이 점에서도 내가 잘못 생각했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하였다." 성경이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말하는 것이 이신론이 말하는 것보다 더 정확하였다. 그 이신론은 인간 본성은 기본적으로 선하고 바른 것이라고 가르쳤다. 그러나 밀러는 그런 주장을 역사 속에서 증명할 수가 없었다. "내가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인간의 품성이 더 무섭게 타락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나는 과거의 역사 속에서 밝은 점을 볼 수 없었다. 세계의 정복자들, 역사의 영웅들은 인간의 모습을 한 마귀였다. . .나는 모든 사람을 믿을 수 없다는 느낌을 갖기 시작하였다."고 밀러는 기록하였다.  

이신론에 대한 밀러의 신념의 마지막 위기는 1814년 플라츠버그 전투에서 하나님이 개입하신 것처럼 보인 사건과 관계된다. 그 전투에서 미국의 "오합지졸"이 월등한 영국 정규군을 물리친 것이다. 영국군 중 어떤 이들은 최근 나폴레옹을 이겼던 사람들이었다.

미국이 질 것은 뻔하였다. "그런 확률 속에서 그렇게 놀라운 결과가 나타난 것은 사람보다 더 큰 능력의 역사처럼 내게 보였다"고 밀러는 결론을 내렸다.

전도서의 저자처럼 밀러는 삶의 엄연한 사실들 때문에 하나님을 다시 보게 되었다. 좋은 소식은 그 삶의 엄연한 사실들이 오늘날에도 동일한 기능을 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눈 외에는 그 어떤 사람의 눈에도 보이지 않고 하나님의 귀 외에는 그 어떤 사람의 귀에도 들리지 않는 은밀한 기도의 장소에서, 우리는 가장 깊이 감추어진 우리의 욕망과 소원을 무한히 자비하신 아버지께 쏟아 놓을 수 있다. 그리하면 인간의 필요의 부르짖음에 반드시 응답하시는 음성이 영혼의 고요와 침묵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향해 말씀하실 것이다"(보훈,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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