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15일 토요일

  “문서전도자- 교회개척의 장부들”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사 52:7).

 

1915년 7월 21일부터 8월 7일까지 문서전도자 장기 수양회가 서울에서 처음으로 있었습니다. 이 집회에 28명이 참석하였고 “개최 당일부터 성신의 지도하시는 아래서 성경의 오묘한 진리를 강구하며 겸하여 권서의 방법과 그 외 간절한 사항을 의논”했습니다(「세 천사의 기별」1915년 9월호).


오벽(H.A.Oberg) 목사는 이 집회에 대하여 1915년 12월 23일자「리뷰 앤드 헤랄드」지에 자세히 전하면서 우리나라 남부지방의 교회들이 대개 문서전도자들에 의하여 개척된 것을 매우 값진 결과로 언급했습니다. 예컨대, 영남지방에서는 송용수라는 문서전도자가 함양군 화산리교회라든가 진주교회, 통영교회 등을 개척했으며, 제주도에서는 김종원이라는 문서전도자가 사계리교회와 애월리교회를 개척했습니다.


Aug15(4).jpg

                                                                                                 오벽 목사 부부

이처럼 문서전도자들이 곳곳마다 교회개척의 선봉대장들로서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이영린 목사는「한국 재림교회사 연구」에서 “이러고 보면 그 누가 이 사업을 적게 볼 수 있으며, 문서전도자들의 노고를 크다 하지 않겠는가? 과연 저들의 감화는 목사나 전도사보다 더 크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언급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문서전도사업은 1909년에 시작되었으나「세 천사의 기별」지가 발간되고 나서 전국 각 곳에서 더욱 활발하게 전개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세 천사의 기별」 1911년 2월호 <교회통신>란은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습니다. “지나간 1월 동안에 월보 파는 일은 재미가 있었는데 부산 방면에서는 ... 두 주일 반 동안에 835권을 팔았다 하고, 순안 지방에서는 ... 수일 동안에 월보 873권을 팔았다 하고, 평양 성에서는 ... 4일 동안에 250권을 팔았다 하고, 경성에서는 ... 월보 642권을 팔았다는데 합이 2,600권이더라.” 이러한 사실과 함께 순안에서 어떤 불신자가 이 월보를 사서 본 후에 신앙을 받아들여 재림신자가 된 사례도 전하고 있습니다.


이 문서전도사업은 어느 나라에서든지 선교 역사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까닭은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선교 대상으로 삼아 출판 전도활동을 해야 할 것이며, 또한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계시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 미구에 우리의 출판물을 읽은 이들 가운데 하루에 천 명 이상 회개할 것을 믿습니다. 그런 비전을 품고 문서전도 활동을 열심케 하시니 감사합니다.  


Aug15(2).jpg
초기의 문서전도인

Aug15(3).jpg
서적 대금을 치를 수 없는 농부는 현물로 서적 대금을 지불했다.

Blessing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