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2. 28 (일)

2008년 12월 28일 일요일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계 22:17).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사과하기를 죽기 전까지 미루고 있는지 의아스럽기만 하다. 사람들은 죽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자신의 생애가 다른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생각해 보는 듯하다.

왜 그렇게도 많은 사람이 생을 마감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일까? 왜 아직 효력을 볼 수 있을 그때 손을 쓰지 못하고 다른 이들이 동정을 금치 못할 때까지 기다릴까? 용기가 없어서일까? 두려움 때문일까? 인간의 자만심일까?

어리석거나 잘못한 것으로 비치는 것이 너무나 두려워서 우리 중 대부분은 아무 일 없는 척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잘못을 인정하기를 싫어하는 까닭은, 다른 이들 특히 가족에게 어리석게 보일까 두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람의 기준으로 볼 때, 이제까지 이 땅에서 살고 간 가장 바보스런 사람은 누구였을까? 그리스도, 그분이셨다. 그분은 한번도 자신이 어리석게 보일 것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으셨다.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막 15:31)라고 많은 사람이 그를 향해 조롱을 퍼부을 때도 그러하셨다.

예수님은 이 땅을 살아간 사람 중에 가장 큰 바보셨다. 그래서 진짜 바보들은 바로 그분이 사랑하셨던 것같이 그분을 사랑하고 싶어 그의 앞으로 나아온다. 그분은 자신의 자만심보다 관계를 먼저 앞세우신다. 사람들이 그분을 바보라고 부르든 말든 그것에 개의치 않으시고, 그 십자가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유혹을 받을 때도 주님은 우리에게 손길을 내미셨다.

요한계시록은 우리가 본 바대로, 예사롭지 않은 이야기와 이상한 짐승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우리는 전쟁, 기근, 온역, 심판 등이 이 책의 주 목적이라는 인상을 받기 쉽다. 그러나 오늘의 본문과 이 책 전체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는 것을 우리에게 되새겨 준다.

요한계시록이 일깨워 주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속하기 위하여 말할 수 없는 대가를 치르셨으나(계 12:11; 13:8 참조), 그 구원을 우리에게 값없이 주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리석은 인간의 심리는 애써 벌지 않은 어떠한 것도 거저 받기를 주저한다. 우리 인간은 우리의 잘못을 시인하는 바보스러움을 두려워하지만 그것이 곧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며,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제시해(계 3:17 참조) 주시는 것이다. 그러나 그분의 희생을 통하여 볼 때, 우리의 바보스런 자존심이 곧 우리의 구원을 하루 더 지연시키는 원인임을 알 수 있다.

주님, 저는 주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생명의 원천을 받아들입니다. 저의 자존심은 제가 이 선물을 얻기 위하여 오늘 특별한 일을 해야만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를 도우셔서 주님께서 베푸시는 사랑과 은혜를 신뢰하게 하십시오.

만일, 너희가 하나님의 자녀일 것 같으면, 그분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어 그분과 같이 될 수밖에 없다. 모든 자녀는 그 아버지의 생애를 본받아 산다. 만일, 너희가 하나님의 영으로 태어난 그분의 자녀일 것 같으면, 하나님의 생애를 따라 살게 된다. 그리스도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골로새서 2장 9절)시기 때문에, 그분의 생애가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고린도후서 4장 11절) 된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생애가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나고 이루어지던 동일한 품성과 동일한 업적을 드러낼 것이다. 마침내, 우리는 그분의 율법의 모든 조목과 조화를 이루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시편 19편 7절) 하기 때문이다. 사랑을 통하여 율법의 이로움이,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로마서 8장 4절) 이루어질 것이다.(보훈,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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