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지 전에

2009년 9월 5일 안식일 - 엘렌 화잇의 권위에 의지함(2)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15:4


우리는 어제 버틀러 대총회장이 갈라디아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화잇 부인을 움직여 증언을생산하게끔 하려는 시도를 보았다. 1886년 8월 23일까지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12 16일쯤에 잠잠한 여 선지자에 대한 그의 인내심이 급속히 고갈되었다. 이 문제를 1886년 대총회에서 신조급으로 결의하려는 그의 계획은 실패하였고, 버틀러는 그녀가 잘 협조하지 않아 안달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요동은 논쟁으로만 끝날 줄 알기 때문에 우리들은 이 주제에 (갈라디아서) 대하여 당신의 대답을 수 년간 기다려 왔다.”고 내뱉었다. 12일 후에 버틀러는 화잇 부인에게하늘에서
오는 증언만이 그의 마음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단언하였다.


1887
3월에 버틀러는 왜고너와 존즈가 그들의 논쟁적 견해를 공개적으로 만든 것을 책망한 엘렌 화잇의 글을 받아본 후 한결 기분이 나아졌다. 갈라디아서 문제에 있어서 엘렌이 자기 편에 있다는 것으로 그녀의 말의 일부를 해석하고, 그녀는 바른 말을 할 것이라고 믿으면서, 버틀러는 그녀에게 자신이 이 주제에 관해 반복하여 편지를 썼지만, “회신을 받지 못하였다.”고 상기시켰다.


그녀에게 석명을 재촉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버틀러는당신의 의견이 알려질 때까지 이 문제에 관한 논쟁들이 계속 어려움을 야기할 것이라고 좋지 않은 조짐의 말을 비쳤다. “당신에게 도덕률이 부가된 법이 아니라는 빛이 있다는 것을 성도들이 알게 될 때 문제는 간단히 해결될 것이다. 성도들이 알기 원하여 초조히 기다리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화잇 부인이 공개적으로 자기 편을 들 것이라고 낙관하였는데, 1887 4월 화잇 부인이 그에게 편지하여 젊은 이들을 책망한 편지가 버틀러의 입장이 옳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자, 버틀러는 그만 상심하여 충격을 받았다.


배신후 그는 이 주제에 관해 그녀의 의견을 묻는 데 더 이상 노력을 낭비하지 않았다. 오히려 신학적 재난의 두려움, 선지자의 배신 그리고 음모의 공포가 그의 마음에서 자라나기 시작하였으며, 그것은 신경과민과 결국 그녀가 정확한 답을 주지 못함에 대해 공격하는 1888년 10월 1일 장문의 편지로 이어졌다.


그것도, 이 문제는 중요하지 않으며, 취급하지 말하야 한다는 화잇 부인의 반복된 권고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되었다.


여기서 우리 각자에게 질문이 생긴다. 우리가 성경과 엘렌 화잇의 권면에 접근할 때, 우리의 의견이 우리의 생각에 얼마나 영향을 미쳐야 할까? 생각해 보라. 정직하라!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갖는 인간 가족들과의 모든 교제에 거룩한 감화를 끼쳐야 한다. 진리의 누룩은 경쟁심이나 야심이나 으뜸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하지 않는다. 하늘로부터 온 참된 사랑은 이기적이거나 변하기 쉬운 것이 아니다. 이 사랑은 사람의 칭찬에 의존하지 않는다(COL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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