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2009년 9월 16일 수요일 - 두 종류의 의(4)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3:20


성경의 가르침은 명백한 것처럼 보인다. 율법의 기능은 하나님의 이상을 고수하며, 우리가 이런 이상에 도달하지 못하여 실패하였을 때, 우리의 죄를 지적하는 것이다. 로마서 3 20절에서 율법은 결코 구원하는 힘이 없다고 분명히 말한다.


그것은 모두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나 만일 내가 정말 율법의 행위 없이 믿음을 통한 은혜로서 의롭게 된다고 믿는다면 율법은 어떻게 되는가?


좋은 질문이다!


바로 율법을 경시하는 것이 안식일을 폐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스미스와 버틀러로 하여금 1888년 시대를 맞게 하였다.


이 주제에 관한 버틀러의 말을 들어보자. “우리를 통하여 율법의 의가 성취됨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그는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라, 그러면 아무 문제도 없을 것이다.… 예수께서 다 해 주신다.’는 느낌이 거의 모든 곳에 널리 퍼져 있는데이것은 기분 좋지만 위험하다고 주의를 주었다. 바로 이 가르침은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오류 중 하나이다.”라고 버틀러는 선언하였다. 셋째 천사의 기별의 전체적 요점은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순종의 필요이다.…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라고 그는 강조하였다. 버틀러는 기독교계가 신속하게 진리를 상실하고 있으며, 재림교인들은 진리를 쳐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바로 이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그의 의를 너무 많이 언급할 때, 율법, 순종 그리고 인간의 의의 필요가 폐해질 것이라고 두려워하였다.


그런 두려움이 미네아폴리스 총회 중 존즈와 왜고너의 가르침에 대한 반발 속에 있었다.


양편은 두 개의 상이한 관점을 갖고 있었다. 개혁자들에게 중심적인 단어는그리스도,” “믿음,”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등 그리스도의 의에 관한 용어들이었다.


반면, 스미스와 버틀러 일행은인간적 노력,” “행함,” “순종,” “율법,” “계명들,” “우리의 의,” 그리고행함으로 말미암는 의등을 강조하였다.


이 두 강조점이 미네아폴리스 총회 120년 후인 지금도 재림교단 내에 매우 뚜렷하다.


 
이 둘은 서로를 용납하지 못하는 상태에 있어야 하는가? 왜 그런가? 왜 아닌가?


우리가 이 문제들을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라. 여러분의 가족과 친구들과 대화해 보라.

 

천연계 가운데는 신비한 진리가 있다. 땅과 바다와 하늘은 진리로 충만해 있다. 이것들은 모두 다 우리의 교사이다. 천연계는 큰소리로 하늘의 지혜와 영원한 진리를 가르쳐 주고 있다(COL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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