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울리지 않는 목회 후보자

1월 4일 일요일 어울리지 않는 목회 후보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

희망차고 기대가 넘치는 기쁨의 2차 대 각성 가운데서 우리는 목회에 재능이 없어 보이는 후보자를 발견한다.

사실상 윌리엄 밀러(William Miller, 1782년생)는 20대에 목사를 닮는 일보다는 흉보는 일에 더 치중했던 사람이었다. 특히, 자기 가족 출신 목사들을 표적으로 삼아 그런 놀이를 하였다. 그런 못된 짓의 대상에 포함된 사람들은 그의 조부인 펠프스(Phelps, 침례교 목사)와 그의 삼촌인 로우 햄프톤 침례교회의 엘리후(Elihu) 밀러였다. 

조부와 삼촌의 설교의 특징을 흉내 내는 것이 믿음 없는 그의 동무들에게 무척 큰 여흥거리를 제공하였다. 그의 친족의 "말과, 억양, 몸짓, 열정, 친족들이 밀러를 향해 나타내는 슬픔"까지도 "우스꽝스러운 심각함"으로 흉내 내었다. 

친구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을 넘어서, 그런 장남은 젊은 밀러가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주는 것이었다. 신속히 문화가 바뀌는 시대에 사는 다른 젊은이들처럼 밀러도 정체성의 위기를 겪었다. 그의 친족에 대한 반향도 그들의 부모와는 다른 그들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수년간에 걸친 청소년기의 투쟁의 일부였다. 

불행히도 그 투쟁은 부모들과 청소년들에게 공히 힘든 과정이었다. 매우 신앙적인 밀러의 어머니에게는 참으로 그러하였는데, 아들의 못된 행실이 결코 재미나게 보이지 않았다. 그녀에게 있어서 정자의 행동은 "죽음의 쓴맛"이었다. 

그러나 윌리엄은 늘 그렇게 종교를 반대한 사람은 아니었다. 어린 시절 그는 고통스러우리 만큼 신실하였다. 그가 10대에 쓰기 시작한 일기의 첫 장에는 이런 말이 있다. "나는 일찍이 주님께 기도하는 법을 배웠다." 일기장을 시작하면서 자신에 관한 유일한 묘사를 그렇게 남긴 것으로 짐작하건대 자신의 특성으로 그 점을 중요하게 여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오래 가지 못하였다. 장년이 되면서 그는 기독교를 떠났고, 공격적이고 의심 많은 이신론자가 되었으며, 그의조부 뿐만 아니라 기독교까지 비웃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연로한 조부 펠프스는 결고 그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윌리엄의 어머니에게 "윌리엄 때문에 너무 괴로워하지 말라. 그가 하나님을 위하여 할 일이 있을 것이다."고 위로하였다. 정말 그렇게 되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어머니에게 있어서 그 말이 성취되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 것이었다. 

펠프스는 자기의 자녀들이 손자들을 위해 기도하기를 쉬지 않았다. 바로 여기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에게 중요한 점이 있다.  

“은밀한 중에 계시는 너희 아버지께 기도하라.”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어린아이와 같은 신뢰심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다. 그 어떤 사람도 중보자로 나설 필요가 없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를 알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는 것처럼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열 수 있다(보훈,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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