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2009년 9월 4일 금요일 - 엘렌 화잇의 권위에 의지함(1)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벧전1:24, 25

대총회 지도자들은 교회가 당면한 신학적 문제를 인간적 권위를 사용하여 해결하려는 시도에 실패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논쟁점에 엘렌 화잇의증언을 적용하는 것은 더 좋다고 느꼈다. 그녀의 기록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닌가?


버틀러는 특별히 그런 결정 속에 있는 가능성에 흥분하였다. 1886 6월부터 1888 10월까지 그는 갈라디아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기가 필요한 권위적인 해석을 엘렌 화잇이 제공하도록 점점 더 많은 압력이 느껴지는 일련의 편지를 썼다. 아마 그가 성공했다면 그는선지자를 강요하는 법이라는 제목의 책을 저술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심리를 적절하게 이용하여, 버틀러는 엘렌 화잇의 반응을 이끌어 내기 위해 부드러운 방법으로 시작하였다. 1886년 6월 20일, 버틀러는 화잇 부인에게 존즈와 왜고너가 갈라디아서의 율법이 도덕률이라고 가르치는 것은 전통적인 재림교회의 가르침과 조화되지 않는 것이라며 불평을 써서 보냈다.


버틀러는 부드럽게 호소하면서 엘렌을 합당한 답쪽으로 슬며시 밀었다. “나는 수년 전 당신이 이 부가된 율법은 도덕률이 아니고 치료적 시스템이라는 빛을 받았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이 문제가 어떻게 해서든지 결말이 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가르쳐지고 있는 부가된 율법이 도덕률이라는 사상을 받아들여야
만 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많은 지도자 형제들에게는 매우 쓴 약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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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대총회장은 이 주제에 관하여 조금 더 개방적이 되었다. 그는 이 주제가 논쟁을 야기하는 것을 주목한 후에, 재림교회 지도자들이 의식법이라고 해석한 1850년대의 상황에 대하여 매우 구체적으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자신이 이 주제에 관하여 소책자를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암시하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그녀의 의견을 잘 모르겠다면서, 그러기에 자신이 엘렌에게 보여 준바른견해에 그녀가 확인 도장을 찍을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고 넌지시 알렸다.


여기 버틀러에게 문제가 있다. 선지자가 무엇을 하도록 어떻게 그를 강요, 조작 또는 재촉할 수 있는가?


좋은 질문이다. 우리는 내일 이 질문에 대하여 조금 더 살펴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과 이 시대에 주어진 예언의 은사와의 관계를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성경의 진리는 사람의 가장 큰 필요인 믿음으로 말미암는 심령의 거듭 남을 이루게 해 준다. 이 큰 진리의 원칙을 우리의 일상 생애에 실천하기에는 너무 순결하고 거룩한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물론 이 진리는 하늘에 미칠 만큼 높고 영원을 포용할 만큼 원대하지만 그 진리의 생생한 감화가 사람의 경험 속에 짜여야 한다(COL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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