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2. 19 (금)

2008년 12월 19일 금요일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계 22:2).

이 구절의 마지막 부분은 언제나 나를 감동하게 한다. 만일 새 예루살렘이 완전한 세계의 일부라 할진대, 치료(소성)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때에는 질병과 죽음 따위는 다 지나간 일이 아닌가(계 21:4 참조). 그러므로 본문의 말씀이 육체적 치료를 말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 본문이 말하는 치료는 개인적 치료뿐 아니라 ‘온 나라들’이 치료를 받을 것이라고 한다. 히브리어 ‘고임’이라는 단어에서 나온 ‘만국’은 다른 외국 나라들과 이방인 모두를 총칭하는 말이다.

요한계시록 22장 2절의 ‘치료’는 국가적, 언어적 장벽을 제거하는 것을 뜻한다는 해석이 있다. 온 나라와 족속과 방언에 속한 사람들이 새 예루살렘에 산다. 생명나무 잎사귀는 고통을 이겨 내며 사람들 간의 장벽을 허물어뜨리는 것을 예표한다. 그 목적은 유대인과 이방인, 종과 자유인, 남자와 여자의 모든 정신적, 감정적 장벽을 헐어 버리고 구원받은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으로 묶이는 것이다.

근자에 세계는 남아공에서 이 일을 미리 맛볼 수 있었다. 유진 드콕은 남아공 백인으로 다년간 국가가 인정한 인종차별 결사단 지휘관으로 근무하였다. 그는 현재 반인류적 범죄로 212년 형을 언도받고 프레토리아 감옥에서 복역 중이다. 흑인 여자 심리학자 품라 고보도 마디키젤라 씨는장장 46시간 동안 드콕 씨를 인터뷰하였다. 경비는 그녀의 안전을 위하여 드콕 씨를 의자에 쇠사슬로 묶어 놓고 또 바닥에 대못을 박아 고정시켰다. 그리고 혹시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면 안전한 곳으로 쉽게 대피할 수 있도록 그녀의 의자 밑에는 바퀴를 달아 주었다.

드콕 씨는 괴물같이 행동하지 않고, 그가 사주하여 죽임 당한 흑인 경찰들의 부인들을 만나게 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는 그들에게 개인적으로 사과하고 싶었다. 그런데 드콕 씨와 고보도 마디키젤라 씨 모두가 놀라는 일이 있었다. 한 부인이 “나는 그로 인하여 깊은 감동을 받았다.”라고 고백한 것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모든 부인이 ‘자연스럽게’ 그를 용서하였다는 사실이다.

이런 못된 사람이 용서받을 가치가 있는가? 잔인한 현실을 뛰어넘어, 민족적, 문화적, 증오심을 어루만져 주고 불가능하게만 보이던 일을 가능하게 하는 그 어떤 능력이 용서 안에 들어 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용서는 용서를 베푼 사람을 치료한다는 것이다. 한 백인의 고통스러운 마음은흑인 심리학자의 마음을 너무도 감동시켰고 어느 순간 자신의 위험도 잊은 채, 그녀는 손을 뻗어 그의 떨리는 손을 잡았다. 그러한 행동은 두 사람 모두를 놀라게 했다. 나라의 치유가 시작된 것이다.

주님, 나라의 치료(소성)가 오늘 제 마음에서 시작되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의 용서가 제 주위 모든 이에게 미칠 수 있도록 힘을 주십시오.

그리스도의 영으로 감동되는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된다. 이 사람을 겨냥한 강타는, 그를 당신의 임재로 두르고 있는 구주께로 떨어지게 된다. 그에게 닥치는 것은 무엇이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오게 된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방벽이 되시므로, 그는 악을 대항할 필요가 없다. 주께서 허락하시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그를 건드릴 것이 없다. 그리고 주께서 허락하시는 것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로마서 8장 28절)게 된다(보훈,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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