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2. 9 (화)

2008년 12월 9일 화요일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더라”(계 21:9~11).

중부 일리노이 주 57번 고속도로의 풍경은 끝없는 평지로 된 농장과 초장 그리고 나무 몇 그루가 듬성듬성 서 있을 뿐이다. 어느 흐린 3월 중순, 나는 저 멀리 먹구름 사이로 보이는 거대한 십자가 형상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나는 처음에 ‘아마 이것이 공업용 신개발 물체인데 십자가 모양처럼 보이는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까이 갈수록 그 물체는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형상이었으며, 그 들보는 다이아몬드형 금속에 잘 박혀져 80자(약 22미터) 높이로 우뚝 서 있었다. 이 십자가가 왜 이 길 옆에 서 있게 되었는지에 대한 아무런 표시나 설명도 없이 거기 그냥 있었다.

나는 그 기념상이 혹 어떤 사람이 하나님과의 특별한 중재를 기념하려고 세웠나 하고 생각해 보았다. 아니면, 그 또는 그녀가 연못에 빠졌을 때 “주님, 지금 당장 저를 건져만 주시면 주님의 형상을 이 주에서 가장 크게 세우겠습니다!”라고 했든지 혹은 이 물체가 교회 종각이어야 하는데 회중이 돈이 떨어져 정작 지어야 할 교회는 못 짓고 이 기념상을 지었든지, 별생각을 다해 보았다. 그 십자가는 일리노이 주 한 모퉁이의 구경거리임에 틀림없었다.

이 이야기를 요한계시록 내용과 비교할 수 있겠다. 만일 우리가 주의를 소홀히 한다면 짐승, 독수리과 새, 흑암, 지진 그리고 우박이 요한계시록의 전부인 듯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그저 일리노이 주의 초원 풍경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겠다. 진정한 요한계시록의 주목거리는 전쟁이나 재난, 원유 혹은 중동 문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못 박히심이다.

어떤 이들은 당연히 새 예루살렘이 내려오는 사건이 초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그 거대함과 빛남 그리고 그 색다른 모양들은 이야기의 중심이 되기 쉽다. 그러나 이 책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이다. 그렇기에 새 예루살렘은 예사로운 도시일 수 없다. 예루살렘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이다. 그러나 요한은, 예루살렘마저도 초점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가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예수님에 대한 명확한 그림 없이 이 책을 읽는 것은 핵심을 잃는 것이다.

주님, 앞으로 임할 세상의 흥분으로, 오로지 주님만이 영생의 이유라는 안목을 잃지 않게 하십시오. 영원을 위하여 날마다 주님을 더 잘 알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 자신을 바치는 것은 희생이 요구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더욱 고상한 것을 위하여 저속한 것을, 신령한 것을 위하여 세속적인 것을, 영원한 것을 위하여 사라져 없어질 것을 버리는 희생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의지를 파괴하려고 하지 않으신다. 그것은 우리가 의지의 활용을 통해서만 그분께서 원하시는 바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의지를 순결하고 깨끗하게 된 상태로 다시 돌려 받기 위하여, 우리는 그것을 하나님께 바쳐야 하며, 또 그분께서 우리를 통하여 당신의 사랑과 능력을 아낌없이 쏟아 부으실 수 있도록 그분께서 원하시는 방법으로 그것을 그분과 연결시켜 놓아야 한다. 강퍅하고 고집 센 자들에게는 이 같은 굴복이 참으로 쓰라리고 고통스러울지 모르나 “너희에게는 유익하니라.”(보훈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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