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2. 24 (수)

2008년 12월 24일 수요일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 22:11, 12).

내가 아홉 살 때, 어떤 사람이 어머니께 예수님이 1964년에 오실 것이라고 말한 것을 기억한다. 그는 ‘내가 올 때는 세상이 노아의 시대와 같을 것이’(마 24:37 참조)라는 성경절을 들먹였다. 그리고 노아의 때는 120년(노아가 방주를 지은 기간)이라고 계산하고, 이 햇수에 1844년을 더하여 예수님이 1964년에 오실 거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 이야기는 나로 하여금 그것이 사실이라면, 1962년까지는 실컷 내 멋대로 살다가 그 후에 예수님 맞을 준비를 하면 되겠다는 결론을 내리게 하였다.

1975년에는 어떤 두 형제가 예수님은 1981년에 오신다고 가르쳤다. 그때 나는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우리 중 몇 명에게 공부는 그만두고 세상에 경고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재촉하였다. 내가 그들 말을 심각하게 여겼을까? 아마 조금은 그랬을지 몰라도 나는 이미 한 번 이런 일을 겪었던 터였다. 내가 깨달은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장래에 쓰임 받기 위하여 철저히 준비하기 원하신다.’는 것을 앎으로 예수님이 속히 오신다는 신앙의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1세기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읽을 때도 위의 상황과 비슷한 형식으로 읽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들은 주님께서 하신 약속이 더디 성취(벧후 3:9 참조)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베드로는 재림이 지체되는 듯 보이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회개에 이르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의 지연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소원이 너무나 커서 그가 다시 오신다는 것을 비웃고 조롱하는 사람들에게도 많은 회개의 기회를 주신다.

그러나 순수한 믿음의 사람들은 그의 오심이 더디면 더딜수록 점점 더 믿음이 깊어질 것이다. 이 본문의 열쇠는 예수님이 오시는 시간이 아니라 오시는 분이 누구인가라는 것에 있다. 절친했던 친구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헤어진 시간이 길수록 더욱 기대감으로 부풀어 오를 것이다. 내가 아내를 떠나 여행할 때면, 그녀는 날이 갈수록 더 어여뻐지고,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함께 있고 싶어진다.

예수님과의 관계가 그분이 속히 오실 것 때문에 유지되는 것이라면, 그것은 살아 있는 관계가 아니다. 우리가 매일의 생애를 세상에서 사는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사는 동안은 ‘지체됨.’이 우리의 관계를 허물지 못한다. 매일의 삶 속에서 우리의 할 말은 ‘그가 속히 오실 것이다!’라는 말뿐이다.

주님, 전처럼 날짜 정하는 일이 없어진 것에 감사드립니다. 주님을 더 잘 아는 일에 초점을 맞추게 하시고, 재림을 더 잘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우리 하나님께서는 말로 다할 수 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신다(보훈,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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