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곤경에 처함

2009년 4월 5일 일요일 - 경제적 곤경에 처함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롬 12:1

산 제사를 드리기보다는 죽은 제사를 드리는 것이 훨씬 쉽다. 최소한 죽음으로 제사는 끝나 버리지만, 살아 있는 동안 제사는 계속 진행해 나가야 한다. 재림주의 창시자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전에 살펴보았던 베이츠는 상당한 부자였었다. 그러나 자신의 집을 제외한 모든 소유를 밀러주의자들에게 주고 난 후, 그는 경제적 어려움 가운데서 여생을 보냈다.
베이츠 한 사람만이 아니었다. 1848년 4월, 제임스 화잇은 자신과 엘렌에 대하여 이렇게 기술하였다.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고는 옷, 이부자리, 간단한 가구 등인데, 삼 피트짜리 트렁크에 반도 안 찬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열어놓으신 곳에 가서 하나님을 위해 봉사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다.”
그러나 당시 특별히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빠졌을 경우 여행하는 일이 항상 쉽지는 않았다. 예를 들어, 1849년 초에 베이츠는 버몬트 주에 가서 기별을 전하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는 강한 느낌이 들었다. 한푼도 없이, 베이츠는 남부 매사추세츠에서부터 걸어가기로 작정하였다.
그러나 그 선교 여행에 대한 신념에 찬 사람이 오직 베이츠 하나만은 아니었다. 엘렌 화잇의 동생 사라 역시 베이츠를 도와야겠다는 느낌을 받아 그의 선교 자금에 보탬이 되기 위하여 주당 1불 25전의 일을 하며, 주인에게 임금을 선불로 달라고 요청하였다.
선교 여행은 수확이 좋았다. 제임스 화잇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베이츠에게는 어려운 시간이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와 함께 하셔서 아름다운 일들을 많이 이루셨다. 그는 안식일을 준수하는 무리들을 새로 만들어 놓았다.”
좀 더 안락한 시대에 사는 우리들로서, 초기 재림신도들이 그들의 사명을 성취하기 위하여 겪어야만 했던 궁핍한 생활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후에 제임스 화잇은 이렇게 술회하였다. “진리를 가르치는 몇 사람들은 도보로, 중고차로, 혹은 증기선을 타고 여행하였다.” 이러한 여행에서 그들은 “담배 연기, 선원의 경박한 대화”에 노출되었노라고 엘렌 화잇은 말한다(증언보감 1권, 77). 간혹 밤이 되면, 겉옷을 이불삼아 옷가방을 베개 삼아 수하물 창고의 맨바닥이나 화물 상자나 곡식 자루 위에서 잠을 청하곤 했다. 겨울에는 온기를 유지하려고 갑판 위를 걸어 다녔다.
우리는 희생적 삶을 살아왔다고 상상한다. 다시 생각해 보라. 우리들 대부분은 우리의 교회를 세우는 데 희생에 관한 흐리멍덩한 사상을 갖고 있지 않는지.

하나님의 약속을 그대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분의 말씀 그대로 그분 앞에서 간구하라. 그리하면 그대는 기쁨이 충만해질 것이다(TFMB, 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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