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나무는] 자라 큰

2009년 12월 14일 월요일 - 유례없는 선교 실적 1900-1950(1)

 


[그 나무는] 자라 큰 나무가 되어 13:19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의 시작은 그야말로 비유에 나오는 겨자씨 한 알과 같았다. 그러나 그것이 자라며 드디어 뿌리가 왕성히 뻗었으니!


1890
년대에 전세계로 퍼진 후 20세기를 맞이하자 재림교회는 강력한 조직으로 보강된 지도력과 응집력으로 일대 폭발적 확장을 시도할 준비를 갖추게 되었다.


성공을 가능케 했던 원인들 중의 하나는 20세기가 시작되고 처음 30년 동안 교단 역사상 가장 선교 지향적인 지도자들이 교단의 최고위직을 담당하였기 때문이다. 아서 G. 다니엘즈는 1901-1922년까지 대총회장으로, 그 후 4년간은 대총회 서기로 교회를 섬겼다. 한편, 윌리엄 A. 스파이서(Spicer) 1903-1922년까지 대총회 서기로, 그 후 1922-1930년까지는 대총회장으로 섬겼다.


대총회장 자리는 물론 방향 설정에 중요한 자리다. 그러나 해외 선교에 관한 한 재림교회에서 회장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서기이다. 왜냐하면 대총회 서기는 1903년 이래 교단의 해외 선교부 기능을 넘겨 받았기 때문이다.


스파이서와 다니엘즈는 유능한 지도자였을 뿐만 아니라 세 천사의 기별을각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14:6) 전하는 사명에 헌신한 사람들이었다.


재림교회 선교 부문에 일어난 변화의 규모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1880년에 교단은 8개의 해외 선교 기지가 있었다. 이 숫자는 1890년까지 그대로 있다가 1900년에는 42개로, 1910년에는 87개로, 1920년과 1930년에는 153개와 270개로 각각 증가하였다. 이런 역동적인 확장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를 북미 중심 교회로부터 세계적인 운동으로 만들어 놓았다. 1890년대는 선교 발전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시기였다. 이 시기 이전에는 선교 본부 숫자가 별로 증가하지 않았다. 그러나 1890년대부터 그 수는 빠르게 증가하였다. 이렇게 온 세계로 계속 확장되자 교회의 지리적 경계가 변할 뿐만 아니라 점점 더 빠르게 재림교회의 성격이 변화되었다.


만일 안식일 준수 재림 운동의 개척자들이 1930년대의 관점에서 볼 수 있었다면, 그들은 얼마나 놀라워할까. 그러나 이것은 거대한 변화의 시작에 불과하였다. 1930년대의 지도자들은 오늘의 교단을 몰라볼 것이다. 그리고 만일 오늘의 지도자들이 2030년대로 옮겨진다면, 그들도 똑같은 충격을 경험할 것이다. 재림 신앙은 역동적인 운동이다.

 

이해할 수 없는 시련이 닥칠 때에도 마음의 안정이 깨어지지 않게 해야 한다. 아무리 억울한 취급을 받을지라도 격분해서는 안 된다. 복수의 정신을 가지면 우리는 자신을 해하게 된다(COL 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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