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로 베이츠

1월 31일 안식일 - 포로 베이츠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마 6:34

나는 꽤 나이가 든 후에야 이 말씀을 이해하게 되었는데, 신국제역(NIV)에는 더 잘 표현하였다. “그날 그날 괴로움이 넘친다.” 젊은 베이츠는 이 점에 동의할 것이다. 1807-1809년에 겪었던 것은 앞으로 겪을 어려움의 전주곡에 불과하였다. 그의 삶에서 주요한 전환점은 1810년 4월 27일에 일어났다.

그 날 밤, 영국 리버풀의 하숙집에 한 경찰관을 따르는 12명의 징집관들이 칼을 들이대며, 미국 시민이라는 문서를 보여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와 몇몇 미국 사람들을 영국 해군으로 징집하였다. 우리는 이러한 일을 상상도 할 수 없지만, 당시는 어려운 시대였다. 영국은 나폴레옹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고, 해군에는 사람이 필요하였다. 저임금과 불결한 생활 환경, 빈약한 음식, 일상적인 채찍질 등 때문에 신병을 모집할 수가 없었다. 1812년 미국이 영국과 전쟁을 시작할 즈음 영국 해군에는 약 6,000명의 미국인이 있었다. 17세의 베이츠는 그 후 5년간(1810-1815) 영국 정부의 “손님”으로 있었는데, 그 중 반은 왕립 해군의 선원으로, 반은 전쟁 포로로 있었다.

그의 경험은 그가 얼마가 강한 사람인지를 보여 주었다. 1812년 전쟁이 발발하였을 때, 영국은 베이츠의 부대에 있던 200명의 미국인들이 프랑스를 대항하여 싸우도록 하였다. 베이츠를 포함한 여섯 명만 고사하였으며, 원칙에 입각한 그의 거절은 비싼 값을 치루었다. 한번은, 프랑스 선단과 접전이 있었는데, 자신을 제외한 모든 미국인이 영국을 도왔다고 베이츠는 전한다. 그가 불복하자 영국 장교가 베이츠를 쳐서 바닥에 넘어뜨리고, 착고에 채우라고 하였다. 베이츠는 자기가 그럴 자유가 있지만, 그가 전쟁 포로이기 때문에 일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러자 장교는 베이츠에게 그런 행동이 시작되면 베이츠를 “제일 큰 밧줄에 묶어서 프랑스 군의 표적이 되게 하겠다.”고 하였다.

독립심과 결단력이 그의 남은 모든 삶을 꼴지웠다. 원칙에 굳게 선 용기 있는 삶이 그를 강한 사람으로 만들어 밀러주의가 무너진 곳에서 한 운동을 일으키게 하였다. 그의 후손이 형통할지어다.

하나님께서는 각 회중 속에 조셉 베이츠와 같은 사람을 필요로 하신다.

 

만일, 자아를 버리고 자신을 그리스도께 바치면, 그대는 하나님 가족의 일원이 되고, 아버지의 집에 있는 모든 것이 그대를 위한 것이 된다. 현세와 내세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모든 보화가 그대에게 열려진다. 천사들의 봉사, 성령의 선물, 그분의 종들의 활동, 이 모든 것이 그대를 위한 것이다. 세상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과 함께 그대에게 유익될 수 있는 한 그대의 것이다. 악한 자들의 적의까지도 그대를 하늘나라에 적합하도록 훈련시켜 줌으로써 축복이 된다는 것이 판명될 것이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 되면, “만물이 다 너희 것”(고린도전서 3장 23, 21절)이 된다(보훈,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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