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2. 15 (월)

2008년 12월 15일 월요일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계 21:24).

세상 농담 가운데 ‘낡아 빠진 편견이 하늘에서도 지속된다.’라는 말이 있다. 침례교인의 하늘에서는 서로를 물속에 모두 처넣을 것이고, 오순절교인의 하늘에서는 모두가 손을 뻗고 춤추며 돌다가 넘어져 버릴 것이고, 천주교 하늘은 이렇고, 감리교 하늘은 저렇고 등등을 읊고 있다. 이 농담이 우스운 것은 하늘에서는 하나님께서 이런 차별을 없애실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새 예루살렘에서는 저마다 배경이 다른 사람들도 예수님 안에 함께 살면서 서로를 기쁨으로 용납해 갈 것이다.

남아공의 인종차별주의가 쇠퇴해 갈 즈음의 이야기이다. 한 백인 목사가 교회에서 저녁 회의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괴한들의 습격을 받았다. 백인 교인들은 모두 두려움에 쓰러져 있는 목사를 지나쳐 집으로 가 버렸다. 그런데 녹슬고 낡아 빠진 트럭을 탄 한 늙은 줄루족 흑인이 와서 목사를 구해 주었다.

사회에서 버림 받은 부류에 대한 정의가 시대마다 변하는 것은 참으로 흥미로운 일이다. 선한 사마리아인에 대한 비유는, 우리가 현 시대의 사마리아인을 만나지 않는 한 우리에게 하등의 불편이 없다. 그런데 예수께서 그 이야기를 오늘날 다시 말씀하신다면, 어떻게 말씀하실까? 강도 만난 사람을 탈레반이 지나쳐 버린 다음, 대형 교회 목사가 또 지나쳐 버렸다고 하실까? 착한 사마리아인 대신, 동성연애자 혹은 이슬람 폭력 혁명주의자들이라고 바꾸어 쓰실까? 편견이 없는 장래에 관한 오늘의 본문은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이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다. 우리는 ‘버려진 사람들’에 대한 사사로운 견해 때문에 눈이 머는 경향이 있다. 노스다코타에 사는 사람들은 뉴욕에 사는 백인들의 흑인 차별에 분노하면서도 자신들은 이와 비슷한 적대 감정으로 인디언들을 차별한다. 뉴욕 사람들이 ‘요켈’이라 부르는 노스다코타 사람들에 대한 태도도 피차 일반일 것이다.

교회 안에서도 우리는 어떤 교리의 세세한 부분을 상대방이 어떻게 해석하는지, 혹은 예배당에 들어올 때 그들 모습이 어떠한지, 어디에 사는지 또는 시끄러운 음악에 손뼉을 치는지 안 치는지 등에 따라 서로 선을 긋고 갈라선다. 복음은 우리에게, 오늘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대했느냐에 준하여 새 예루살렘의 영광을 기대하라고 요청하신다. 예수님은 각자에게 독특한 점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를 받아 주시며, 우리가 그분의 형상을 닮기까지 지속적으로 재창조하는 일을 멈추지 않으신다. 예수님의 사랑에 보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은 그분이 우리를 대하신 것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것이다. 이 원칙이 하늘 삶의 중심이다.

주님, 제 눈을 열어 주셔서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 제 마음에 감추인 편견이 저를 주장하고 있지는 않은지 깨달아 알게 하십시오.

그리스도를 배운 사람들은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에베소서 5장 11절) 것이다. 그들은 생활에서와 마찬가지로 말에 있어서도 단순하고 정직하고 참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 입에 거짓말이 없”(요한계시록 14장 5절)는 거룩한 자들과의 교제를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보훈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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