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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7일 월요일 - 예수에 대한 부정적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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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뇨 물으니 가로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바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때를 표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마 2:3~16).

헤롯은 ‘좌불안석’이었습니다. 자신의 왕좌를 차지할 아기가 탄생했다면 그 당시 어느 왕이라도 헤롯과 같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헤롯 대왕은 다른 사람들보다도 더욱 신경을 곤두세웠습니다. 그가 유대 태생이 아니라 이두매인(고대 에돔 족속의 후예)이었던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입니다. 그는 단지 종교 지도자들에 의해 그리고 시민권에 의해 유대인이 되었습니다. 이후 기원전 37년경 로마는 그를 유대의 왕으로 임명했습니다. 그는 유대인 사이에서 자신의 위치를 더 강화시키기 위해 유대 왕족의 딸인 마리암느와 결혼하게 됩니다.
대체로 헤롯은 권력을 향한 과도한 욕망 때문에 불안에 휩싸여 변덕스러운 기질의 극치를 보이며 정신병적으로 다른 사람을 의심하였고, 결국 누군가 자신의 위치에 도전한다고 생각하여 스스로 무자비한 왕이 된 것입니다.
헤롯은 자신을 위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즉시 제거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그의 처남을 제사장으로 임명한 후, 궁전 안에 있는 못에서 ‘우연히’ 익사한 것처럼 죽였습니다. 그가 가장 사랑했던 부인 마리암느 역시 자신을 모해하려 한다고 의심하여 곧 그녀의 오빠와 같이 운명을 맞게 했습니다. 이와 같은 불안감과 두려움 때문에 그는 자신의 두 아들마저 죽였습니다. 그리고 헤롯이 죽기 5일 전(예수가 탄생했을 무렵), 형들을 이어 장남의 자리에 올라 왕위를 계승할 셋째 아들 역시 처형했습니다. 그래서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헤롯의 아들이 되느니 차라리 그가 키우는 돼지가 되는 편이 안전할 것이라고까지 말했습니다.
여기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거나 왕위를 위협하는 것을 절대로 용납하지 못한 왕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헤롯 대왕의 통치 하에서 바로 예수께서 태어나셨습니다. 마태복음 2장 2절에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라는 동방 박사의 질문에 이 통치자가 불안감에 휩싸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따라서 그 잠재적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해 베들레헴에서 두 살 아래의 모든 남자 아기를 죽이라고 헤롯이 명령한 것은 그리 놀랍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어제 예수님을 향한 동방 박사들의 호의적이고 긍정적인 태도를 살폈고, 오늘은 예수님을 겨냥하여 부정적 결정을 내린 헤롯 왕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결국, 삶에서 왕과 여왕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우리 각 사람 안에 이러한 헤롯의 모습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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