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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6일 수요일 - 죄에 대한 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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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배에 오르사 건너가 본 동네에 이르시니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마 9:1, 2).

 

이것은 또 하나의 단순한 치료가 아닙니다. 죄의 용서를 치료와 연관 지었다는 점에서 이 사건은 획기적입니다.
군중 속에 잠입한 ‘구경꾼’ 몇 사람은 이 장면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서기관들이 곧 예수의 신성 모독에 대해서 거론하기 시작했다고 마태복음 9장 3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모세의 율법을 연구하는 전문가를 종종 ‘율법 교사’라고 부릅니다. 이들은 후에 예수의 체포와 심문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맡습니다. 이 상황에서는 예수를 그저 신성 모독이라고 비난합니다. 누가는 추가적인 설명으로 우리의 이해를 돕습니다. “오직 하나님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요컨대 예수가 하나님의 특권을 주장하는 현장을 그들은 목격한 것입니다.
불행히도 교회마다 ‘서기관’ 집단이 있습니다. 인상이 굳은 이 형제자매는 항상 잘못된 것만 찾습니다. 옛날의 서기관처럼, 그들의 태도 그 자체가 긍정적인 것과 담을 쌓습니다. 예수의 재판관들은 놀라운 기적의 중요성을 완전히 놓친 것 같습니다. 정통에 집착한 나머지 불쌍한 인간에 대해 마음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전통에만 신경 쓰다가 눈앞에 펼쳐진 영적 실체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보고 들은 것은 예수가 중풍병자를 용서했다는 것뿐입니다. 다른 것은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제 예수를 십자가로 내몰 수 있는 고소거리를 얻었으니까요.
예수는 그들의 신학을 알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죄 용서를 받지 않는 한 병자의 몸이 나을 수 없고 그런 일은 하나님만 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예수님은 신중하게 처신하여 그 문제를 피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는 대신 그들에게 문제와 도전을 제시하며 이렇게 물었습니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마 9:5).
이 질문은 서기관을 곤혹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사기꾼이 죄를 용서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증거를 제시하는 일은 아무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회복된 중풍병자는 그 자신이 증거가 되어 예수의 신성성을 입증했습니다.
예수의 말이 사실이었습니다. 동시에 그는 죽음의 위협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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