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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9일 일요일 - 유혹의 핵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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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마 4:1).

이 구절에서 복음서는 그리스도께서 선과 악의 대쟁투를 벌이는 주적(主敵)이 누구인지 최초로 드러냅니다. 마태는 4장 1절에서 그를 “마귀”로, 3절에서는 “시험하는 자”로 그리고 10절에서는 창세기의 타락 기사에서 언급된 이후 처음으로 그의 정식 명칭인 “사탄”(대항하는 자)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4장의 사건 이전부터도 마귀는 헤롯에게 행한 것과 마찬가지로 안 보이는 곳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제 밖으로 나와 대쟁투의 선두에 섭니다.
또 우리는 하나님이나 성령님 중 어느 분도 유혹에 적극적인 매개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마태는 단어 선택에 꽤 신중한 모습을 보입니다. “그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마 4:1). 야고보는 하나님께서 그 누구도 시험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약 1:13).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추종자들에게 인격의 향상과 발전을 위해 유혹에 맞서도록 허락하시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곤경에 처하게 될 때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긋나게 되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무엇보다 그리스도께서는 침례를 통해 영적으로 고양된 직후에 유혹을 받으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추종자들이라 해서 세속의 압박에서 면제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시험에서 면제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세력에 저항할 능력을 부여받습니다(고전 10:13). 예수님도 그러했습니다. 그는 다른 인간들과 같이 흔한 유혹에 직면했습니다. 그리고 그럼에도 그는 승리하셨습니다(히 4:15).
예수께서 받으신 유혹을 통해 우리는 유혹의 본성 그 자체를 볼 수 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그리스도는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셨을 때 “자신을 비우”셨습니다. 즉, 그는 자원하여 그의 신성한 특성들을 포기하고 우리 모두가 직면하는 인생의 환경에 자신을 내주셨던 것입니다. 땅에 계시는 동안 성자께서는 우리들처럼 성부와는 독립적으로 살아가셨습니다(요 5:19, 30; 8:28; 14:10). 그는 진실로 우리와 같이 되셨습니다.
예수께서 자신을 비우신 것이 자발적인 행위였다는 사실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아무도 인간이 되라고 그에게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그 자신이 그렇게 결정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자기 비움이 자발적인 것이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그가 당한 유혹의 핵심과 강력함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대적이 만일 예수를 단 한 번이라도 자신을 비우지 못하게 하고 예수의 “숨겨진” 신성한 힘을 사용하도록 유혹하는 데 성공했다면 이 전쟁은 사탄의 승리로 이미 끝났을 것입니다. 엘렌 화잇은 “예수께서 자신의 수준을 인류의 수준에 일치시키는 일은 인간이 자기의 타락한 본성 위로 올라서서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일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습니다(리뷰, 1875. 4. 1.).
그리스도가 당하신 유혹에서 우리 유혹의 핵심도 엿볼 수 있습니다. 개개인이 받는 유혹의 핵심이란 매일 하나님 의지하기를 멈추고 자기만족에 빠져 스스로 자기 인생의 신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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