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1. 24 (월)

2008년 11월 24일 월요일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서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 일천 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계 20:1~3).

천년기가 예수님 재림 전에 있을 것인가 혹은 후에 있을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세 가지 견해가 나왔다. 후 천년설은 천 년간 인간의 발전이 있은 후에 예수님이 오실 것이라는 견해이다. 19세기에 교육과 과학의 발전이 세상살이를 나아지게 한다고 하여 이 견해가 유행했지만, 이것은 성경 말씀에 말세가 되면 매우 어려운 때(살후 2:8~12; 딤전 4:1~5; 계 13~19장)가 올 것이라는 예언과 맞지 않는다. 또 오늘의 현실과도 어긋난다.

전 천년설은 천년기를 글자 그대로 예수님 재림 이후 천 년이라고 보는 견해이다. 무 천년설은 문자 그대로의 천 년이 아니며 기독교 시대 전체 즉, 예수 십자가로부터 재림까지를 가리킨다는 견해이다. 이 두 견해는 단순한 영적 교훈의 측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최근 우리 집 담당 소아과 의사가 네 번째 천년기설을 가지고 내게 접근해 왔다. 그는 “난 요즘 후 천년이네 전 천년이네 무 천년이네 하는 이 모든 토론에 싫증이 났소. 그래서 나는 나대로 다른 시도를 해 보려고 합니다.”라고 말하였다. 나는 “그것이 무엇이지요?”라고 물었다.

“나는 팬(pan) 천년기라고 부르기로 했지요! 세상 끝에는 모든 것이 다 빙빙 돌아갈 것이라는 뜻이지요!”라고 그가 대답하였다.

우리 소아과 의사의 입장도 일리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믿는 바대로는 이 성경절에서 요한은 분명히 천년기는 예수 재림 후에 올 것을 뜻하였다. 천년기가 시작되면 바벨론이나 짐승 같은 배우들은 이미 무대에서 사라졌을 것이다(계 19장). 천년기의 시작 역시 짐승의 표나 짐승에 대한 강제 경배 이후의 일이다(계 13:15~17; 계 20:4 참조).

만일 천년기가 십자가(무 천년설의 입장)부터 시작된다면, 요한계시록 13~17장 사건은 십자가 이전에 일어났어야 한다. 그러나 내가 알기로는 진지하게 요한계시록을 해석하려는 어느 학자도 이런 방법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나는 무 천년기 견해가 옳다고 신학적 주장을 하는 경건한 분들을 존중하고 싶기는 하지만, 그 입장이 요한계시록 자체가 말하는 흐름과는 맞지 않다고 본다.

주님, 사람들이 성경의 뜻하는 바로 토론하는 것이 때로 저에게 혼동을 주고 용기를 잃게 합니다. 저로 세상 끝에는 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실 것을 믿게 하십시오.

구주의 거룩한 사랑과 친절이 사람들의 마음을 그분께로 이끌었다. 랍비들은 그분의 가르치심 때문에 그들이 사람들에게 가르친 모든 교훈의 취지가 무시되어 버린 것을 깨달았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교만과 배타주의(排他主義)를 크게 만족시켜 온 격벽(隔壁)을 무너뜨리고 계셨다. 그들은 만일 허락만 하면 그분께서 사람들을 그들에게서 완전히 끌어 갈 것이라고 두려워하였다(보훈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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